ADVERTISEMENT

장비만 있으면 내가 있는 곳이 곧 사무실...그러나 사람이 그립다 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4호 20면

스마트워크 형태는 재택근무, 모바일오피스, 스마트워크센터 근무 등이 있다. (왼쪽부터) 김창일·임예환 과장과 정철 주무관이 각각 집과 커피숍, 스마트워크센터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신인섭 기자

김창일(34·KT 서비스기획 담당) 과장의 사무실은 원래 KT 광화문 사옥이다. 그런데 그곳에 가도 자신의 자리가 없다. 일주일의 절반은 재택근무를 하고 다른 날은 상황에 따라 서초ㆍ분당의 ‘KT 스마트워킹센터(회사 사무실에 가지 않고 사무실과 동일한 환경으로 가까운 곳에서 일할 수 있게 마련된 업무 공간)’에서 일한다. 그는 “스마트워킹은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된 것과 같아요”라며 “고교 때는 모든 시간표가 정해져 있고 선생님 감독하에 생활하다 대학생이 되면 스스로 시간표를 짜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활용하잖아요. 수업에 빠지건 다른 활동을 하건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하되 학점이라는 결과에 대해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것도 스마트워킹 하고 같은 점이죠”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스마트워킹을 하면서 과정이 아니라 일의 결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겨 오히려 성과가 더 좋아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스마트워커 3인이 말하는 스마트워크

스마트워크는 크게 세 가지 형태다. 집에서 일하는 재택근무, 이동하면서 업무를 진행하는 모바일오피스, 집에서 먼 사무실 대신 가까운 곳에 있는 스마트워크센터에서 일하는 경우다. 이 중 재택근무를 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23일 오후 4시 김 과장의 서울 천호동 아파트를 찾았다. 그는 청바지에 흰 셔츠를 입고 맨발로 취재진을 맞았다. “평소에는 트레이닝복에 면티셔츠를 입고 편하게 일해요. 가끔 화상회의를 하기 때문에 아침에 씻고 머리 정리는 꼭 하죠(웃음).”

일을 하는 방은 평범한 공부방과 다를 게 없었다. 책꽂이와 책상이 있고 책상 위에는 화상회의를 위한 웹 카메라가 달린 노트북과 별도의 모니터, 키보드와 마우스가 놓여 있었다. 그는 9월부터 사무실이 아닌 KT스마트워킹센터에서 일을 했다. 11월부터는 일주일에 절반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인 데다 아이가 시골 부모님 집에서 지내고 있어 낮에는 집을 사무실처럼 쓰는 데 문제가 없다.

이날 김 과장은 오전 8시에 일어났다. 어제 새벽까지 일해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고 했다. 20분간 씻고 곧바로 자리에 앉았다. 회사 상사나 동료들과는 주로 e-메일과 메신저, 전화 등으로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수시로 확인하기 위해 PC는 항상 켜 놓는다고 했다. 업무 관련 보고서를 검토한 뒤 e-메일에 답변하고 회사에서 요청한 자료를 만들어 보내고 나니 점심시간이 됐다. 혼자서 간단하게 점심을 차려 먹은 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재택근무를 시작할 땐 중간에 소파에 눕거나 TV를 보기도 했다. 보는 사람도 없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으니 유혹이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면서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생겼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든 시간 내에 결과를 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평가받기 때문에 냉정하게 시간을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회사로 출근할 때와 동일한 수준의 결과를 내면서도 2시간가량 자기 시간을 갖게 돼 이 시간을 영어 공부에 투자하고 있다.

김 과장은 “재택근무를 하면서 부쩍 트위터나 싸이월드 같은 SNS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게 됐어요. 과거에 비해 전화통화도 더 성의 있게 하고요. 아무래도 하루 종일 혼자 있다 보니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는 게 있네요”라며 “저는 아주 만족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맞는 시스템은 아닐 수 있어요. 기존의 시스템 하고 적절히 조화해 정착시켜야 한다고 봐요. 이제 시작하는 단계니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24일 오후 2시 서울의 한 커피전문점에 자리 잡은 임예환(40ㆍKT IT 컨설팅 담당) 과장이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꺼냈다. 먼저 스마트폰으로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해 메일을 확인했다. 점심 때 확인한 메일함에 그사이 새로운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태블릿PC 전원을 켠 임 과장은 광화문 사무실에 있는 자신의 노트북에 접속해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원격조종을 하기 시작했다. 원격 접속 프로그램으로 태블릿PC와 스마트폰이 노트북과 연결돼 있어 어디서든 노트북에 있는 자료를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태블릿PC랑 스마트폰만 있으면 고객에게 컨설팅을 하거나 PT 할 때 노트북을 가져가지 않아도 전혀 불편함이 없어요. 자세한 보고서는 아니어도 간단한 메일이나 메모도 작성할 수 있고요. 이틀 전에도 정보기술(IT) 컨설팅 의뢰를 받고 충주에 있는 한 대학교에 갔어요. 그때도 태블릿PC에 빔프로젝트를 연결한 뒤 서울에 있는 노트북에 원격 접속해 고객들에게 자료를 보여 주며 PT를 했죠.” 이를 위해 사무실에 있는 임 과장의 노트북은 365일 24시간 항상 켜져 있다고 했다.

사무실 노트북에 연결되자 노트북 화면이 그대로 태블릿PC에 나타났다. 임 과장이 문서 폴더에 있는 한글 파일을 열었다. 자료를 한쪽에 띄워 놓고 회사 홈페이지 열어 컨설팅 제안서를 검토했다. 그는 “고객을 찾아다니며 컨설팅하는 업무 특성상 밖에서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따지면 저는 ‘모바일워킹’을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거죠. 물론 그땐 노트북에 외장하드까지 들고 다녔지요. 저뿐만 아니라 보험이나 영업 쪽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렇게 일하고 있어요”라며 “그래서 처음엔 스마트워킹이란 단어가 새삼스러웠어요. 다만 과거에는 새로운 업무 방식의 하나로 스마트워킹이 존재했다면 최근의 흐름은 조직문화 자체를 바꾸려 하는 것 같아요. 그게 가장 큰 차이점이죠. 회사 내 커뮤니케이션 문화가 대면 문화에서 탈피하고 있는 거죠”라고 말했다.

임 과장은 장비만 있으면 어디든 사무실이 된다고 했다. 일주일에 2번 정도 광화문 사무실로 출근하고 나머지는 고객 미팅이나 프로젝트 스케줄에 따라 스마트워킹센터나 커피숍, PC방 등에서 자유롭게 일한다. 이날도 아침에는 서초구 우면동 KT 연구소에서 일하다 점심 때 광화문 사무실로 왔고, 오후에는 서초 사옥으로 갔다. 그는 모바일 오피스가 장점이 많지만 모든 직종에 무조건 도입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했다. 주로 외부에서 일을 하고 성과가 숫자로 정확히 나오는 업무 형태를 가진 직종에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사실 기술적인 부분은 이미 준비돼 있어요. 모바일 오피스는 상사와 직원 간의 신뢰가 중요해요. 관리자가 직원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계속 감시할 수도 없는 거잖아요. 성과를 통해 평가되겠지만 일단은 직원을 믿어야 하는 거죠. 그 신뢰를 바탕으로 직원을 성과로 평가하는 문화가 보편화돼야 해요.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지금 우리나라 사회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과 상사를 옆에서 잘 모시는 사람 중에 누가 더 좋은 평가를 받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성과주의가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니지만 스마트워킹이란 흐름에 동참하려면 직장 문화가 먼저 변해야 해요.”

노원구 중계동에 사는 행정안전부 유비쿼터스 기획과 정철(37) 주무관은 매일 오전 7시30분 집을 나선다.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8시30분쯤에 광화문 사무실에 도착한다. 하지만 23일은 8시30분에 집에서 나왔다. 집 앞에서 146번 버스를 타고 도봉구청에서 내렸다. 도봉구청에 있는 ‘스마트워크센터’에 도착한 시각은 8시50분. 이곳으로 출근한 건 이날이 세 번째였다. 처음 두 번은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다.

11월 초 행안부에서 문을 연 도봉구청 스마트워크센터는 공무원들이 원래 사무실까지 가지 않고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업무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24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분당에도 비슷한 규모의 센터가 하나 더 있다. 올해 말까지 시범 운영 기간으로 공정위·방통위·교과부·행안부·문화부·복지부·식약청·경기도 8개 정부 부처 공무원과 예금보험공사ㆍ한국정보화진흥원 2곳의 민간 부문 직원이 이용하고 있다. 센터를 이용하는 부처에서는 할당된 인원을 센터로 보내 스마트워크를 체험하게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주일에 하루씩 총 4회 이용한다. 내년에는 수도권과 도심에 8곳의 센터를 더 만들 예정이다.

센터에 도착한 정 주무관은 입구에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손등을 인식기에 대 동맥 확인 시스템을 통과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마다 유리로 된 칸막이가 세워져 있고 책상 위에는 컴퓨터가 한 대씩 놓여 있었다. 이날 오전에는 6명의 공무원이 센터를 이용하고 있었다. 3번 좌석에 앉은 정 주무관은 부여받은 컴퓨터 비밀번호를 입력해 인터넷에 접속했다. 현재 이용 중인 8개 정부 부처 아이콘이 나타났다. 그중 행안부를 클릭하자 행안부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사무실에서 이용하던 것과 동일한 화면이 나타났다. 행안부에서 스마트워크센터 업무를 담당하는 김석태 주무관은 “정부 부처 인트라넷에 접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출입이나 컴퓨터 사용하는 데 있어 보안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이를 위해 외부 USB는 읽기만 할 수 있고 복사는 할 수 없게 했고 부처 홈페이지와 일반 인터넷망을 분리해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지난주 금요일 정 주무관은 아침에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센터로 출근했다. 퇴근 후에도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보낼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개인 시간이 늘어난 점과 다른 잡무에 신경 쓰지 않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센터 이용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내년에 정식으로 센터 이용이 시작되면 꼭 신청해 절약된 시간을 영어 공부나 운동 등 자기계발에 투자할 것이라고 했다.

사무실에 나가지 않는 것이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정 주무관은 “아무래도 공직사회가 다소 경직된 사회이기 때문에 사무실에 나가 얼굴을 보지 않으면 뭔가 불안하고 눈치가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 때문에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우선 중간관리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또 성과 중심의 평가문화가 공직사회에도 정착돼 눈도장 찍고 대면해야 성공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답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