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건강을 지키는 사람들 ⑩ 정상진 천안양조장 대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5면

40대 때 무릎관절이 안 좋아 시작한 탁구가 이번엔 구강암 수술로 못 움직이게 된 오른팔에 ‘기적’을 일으켰다. 정상진 대표가 원탁구클럽에서 연습하고 있다. [조영회 기자]

탁구(卓球)와 탁주(濁酒)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탁주를 만드는 정상진(61·구성동) 천안양조장 대표는 20여년 간 탁구를 쳤다. 탁구는 그에게 건강을 찾아준 은인같은 존재다. 탁구는 수십년간 막걸리를 만들어 온 정 대표에게 탁주 만큼이나 중요한 일상이 됐다. 무릎 관절이 아파 걸을 때 큰 불편을 겪던 40대 초반, 탁구를 시작해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됐다. 최근엔 영 못 쓰게 될 줄 알았던 오른쪽 팔이 탁구를 통해 정상을 되찾아 가고 있다.

 정 대표는 2년전 서울에서 구강암 수술을 받았다. 암이 오른쪽 어깨로 전이돼 림프선 수술 후 오른팔을 움직이지 못했다. 병원에선 재활치료를 통해 점진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초까지 한 요양병원에 다니며 힘든 재활치료를 받았다. 차도가 없었다.

 그러자 정 대표를 20년 전 탁구로 이끌은 천안시생활체육협회 탁구협회 우희종(64·럭키종합장식 대표)고문이 또 나섰다. 우 회장은 천안 사직동의 중앙시장 상가 2층에 ‘원탁구클럽’을 만든 장본인으로 천안 아마추어 탁구계의 산 증인이다. 현재 60세 이상 탁구인으로 구성된 천안라지볼협회장도 맡고 있다. 노란색의 라지볼이란 경기 볼(흰색)보다 무게는 덜 나가고 크기는 더 큰 볼이다. 지름 44mm에 무게는 2.2g. 경기볼은 지름 40mm, 무게 2.7g.

 “아픈 몸으로 탁구를 한다니까 주위에서 깜짝 놀라 말렸어요. ‘큰 수술을 한 사람이 무슨 탁구냐?’는 거였어요.” 어깨걸이로 오른팔을 지탱하고 다니던 영락없는 환자였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렇지만 정 대표는 우 고문의 말을 들었다. 우 고문은 일본에서 수입한 무거운 탁구라켓으로 스윙 연습부터 하라고 정 대표에게 권했다. 처음엔 팔 자체가 조금도 올라가지 않았다. 정 대표는 탁구가 20년 전 관절염을 앓던 다리를 쓰게 했던 걸 떠올리며 열심히 연습했다. 팔이 조금씩 올라갔다.

 주위의 옛 탁구 동료들이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꾸준히 연습했다. 4,5년간 못 잡았던 탁구라켓을 바라보며 “내 몸이 생생 나르며 탁구공을 치는 날이 꼭 오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처음에 들지도 못하던 팔이 점점 탁구공을 쳐 내기 시작했다. 우 고문이 정 대표의 개인코치를 자처하고 나섰다. 오랜 탁구 동료로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순 없었다. 모든 회원들이 기꺼이 정 대표의 연습 상대로 나섰다. 박무홍(57) 원탁구클럽회장은 “정 대표의 회복이 눈에 띄게 빨라, 지켜보는 우리들도 너무 반갑고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탁구치러 갈 생각만 하면 하루가 즐겁다고 한다. 오전엔 집과 회사의 볼 일을 보고, 점심 식사를 하자마자 중앙시장 원탁구클럽을 찾는다. 탁구 동호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주위에서 “이제 다 나은 것 같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정 대표에게 큰 힘이 된다. 아직 구강암 수술 후 입이 자유롭지 못해 말하는 게 쉽지 않다. 내년 5월 한번 더 수술하면 입도 자유로워질 전망이다. 그는 ”원래 구강암 수술(2008년)한지 5년 지나야 후속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탁구가 2년 정도 앞당긴 셈”이라며 “큰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는 탁구가 나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요즘 막걸리 열풍에 사업도 잘 되고 둘째 아들 석환(29)씨가 정 대표를 도와 양조장 일을 보고 있어 마음 든든하다.

 ◆중앙시장 원탁구클럽=클럽회원은 230여 명. 회원 나이는 20대부터 최고령 79세까지. 서울올림픽이 열린 해인 1988년 창립돼 천안 동호인 탁구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건물주인 현 성무용 천안시장에 부탁해 처음엔 임대료 없이 썼으나 현재는 약간의 월세를 내고 있다. 825㎡(250평) 넓은 면적에 탁구대 12대 있다. 아무리 회원들이 몰리는 시간이라도 잠시 기다리면 연습이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회비는 2만원.(가입비 2만원 별도) 회비를 적립해 회원들을 위해 쓴다. 3년 전 나무바닥을 깔아 실내체육관에서 탁구하는 느낌이다. 자동으로 탁구공이 튕겨나와 혼자 연습할 수 있는 자동연습기도 최근 구입했다. 목이 마를 때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킬 수 있도록 클럽 한켠의 주방 냉장고에 막걸리도 사다 놓는다. 정 대표가 가끔 천안막걸리를 싣고와 냉장고를 채워 놓기도 한다.

 원탁구클럽의 산증인인 우 고문은 “탁구공처럼 둥글게, 모나게 않게 지내자는 뜻으로 둥글 원(圓)자를 썼다. 저 잘났다는 으뜸 원(元)자가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1년 365일 문 닫는 날이 없다. 주간에는 야간근무자와 정년퇴직자(노년층), 주부 등이 주축이고 저녁시간에는 젊은 직장인 등이 많이 찾는다.

 91년 500인 이상 회사를 대상으로 원탁구클럽이 주최하는 ‘한마음탁구대회’를 개최해 천안지역의 탁구 부흥을 꾀하기도 했다. 이 대회는 IMF때 회사들 사정이 악화되면서 참여가 어려워져 현재는 명맥이 끊긴 상태다. 92년부터 지역의 탁구 꿈나무 발굴에 일조하기 위해 서초등학교 탁구부에게 후원금을 전달하다가 서초교 탁구부가 해체한 이후에는 천안중과 중앙고에 전달했다. 원탁구클럽의 후원금을 받아 훈련한 선수 중에 국가대표선수도 나왔다.

▶문의=070-8157-1516(원탁구클럽)

글=조한필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