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golf&] “여주 나인브릿지, 오거스타같은 명문클럽으로 만들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21면

김운용 클럽 나인브릿지 대표이사가 명문 클럽의 로고가 달린 모자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대표는 전세계의 명문 클럽을 다니며 골프 문화를 익혔고 모자를 수집했다. 그는 미국의 파인밸리, 오거스타 내셔널, 시네콕 힐스 등과 영국, 아일랜드, 스페인, 호주, 뉴질랜드의 명문 코스를 섭렵했다. [여주=김상선 기자]

1979년 10월 울산 현대조선소 정문 앞. 검은 선글라스를 낀 건장한 체격의 K가 잠복을 하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되자 한 청년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빨래 가방을 들고 나왔다. K는 그를 검정색 승용차에 태우고 사라졌다. 현대조선소에서 나온 청년은 당시 고려대 농구팀 졸업반인 이동균 선수였다. 삼성과 현대가 농구단을 새로 창단해 말 그대로 ‘스카우트 전쟁’이 벌어지던 시기였다. K는 당시 007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스카우트전을 벌인 삼성 농구단의 주무였다.

K는 라이벌 현대에 호되게 당한 터였다. 스카우트한 선수들이 현대 측과 접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주도에 모아놨는데 현대는 경비행기까지 띄워 이동균을 데려간 것이다. 여객기와 배만 감시하던 K는 신출귀몰한 상대의 작전에 허를 찔리고 말았다. 그러나 당하고 있을 K가 아니었다. 이동균이 울산 현대조선소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며칠 동안 이동균의 가족을 설득해 접선 약속을 잡았다. 이동균은 빨래를 세탁소에 맡긴다고 하고 현대조선소을 나와 K를 만난 뒤 삼성의 차를 탄 것이다. K는 현대가 고속도로에서 추격전을 벌일 것을 우려해 일단 부산 제일제당 공장으로 갔다가 국도를 타고 서울로 왔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사태를 대비해 씨름 선수 6명도 함께 움직였다. K는 “서울 신라호텔에 이동균을 넣어 놓고 도망가지 못하게 방에 못질을 했다”고 회고했다.

30여 년 전 삼성과 현대그룹의 자존심이 걸린 싸움터에서 제임스 본드처럼 활약했던 주인공 K는 현재 클럽 나인브릿지 대표가 된 김운용(63)씨다. 그는 66년 배구선수로 제일제당에 입사했고 78년부터 80년까지 삼성 남녀 농구팀 주무를 했다. 삼성이 프로야구를 창단하던 82년부터 89년까지는 야구팀에서 관리부장을 맡았다. 나인브릿지 골프장에서 일한 건 2000년부터다. 그는 점점 작은 공을 찾아가고 있다.

골프장 대표를 맡게 된 건 저돌적이면서도 꼼꼼한 일 처리 덕분이다. 80년 자연농원(현 에버랜드) 식물과장을 했는데 나무를 무척 소중히 여기던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총애를 받았다.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야구단에 불려갔다.

“야구단에 있을 때는 밤 2시까지 일하고 새벽 5시에 출근했다”고 그는 말했다. 87년엔 제일제당 총무부장을 하면서 노사관계를 담당했다. 사회 곳곳에 시위 열풍이 불었지만 제일제당엔 큰 잡음이 없었다. 물론 그의 역할이 컸다. 94년 제일제당 영업부장을 맡은 지 1년 만에 이사가 됐다. 그는 “그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는 대졸이 아니고 고졸 사원이었다. 그는 이사로 재직한 5년 동안 쇼핑몰을 만들고 햇반을 기내식 비빔밥 메뉴로 넣는 등의 업적으로 네 차례 영업대상을 받았다. 2000년 CJ 푸드 시스템 대표이사가 됐는데 나인브릿지 골프장을 개장하면서 다시 차출됐다. 김 대표는 “스포츠 경력은 물론 골프장에서 필요한 조경과 노사관리를 해본 경험이 있고 영업·마케팅까지 해봤기 때문에 적임자로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개장 5년 만에 세계 100대 골프코스에 진입한 제주의 클럽 나인브릿지.

나인브릿지의 모회사인 CJ그룹은 그에게 원대한 목표를 제시했다. 최고의 클럽을 만들어 국내 최초로 세계 100대 코스에 진입시키라는 것이었다. 나인브릿지는 그래서 국내에선 처음으로 페어웨이에 벤트 그라스를 심었다. 콘도를 지은 것도 최초였다. 그러나 코스와 시설이 좋다고 해서 세계 100대 골프장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이 없는 신설 골프장이 100대 코스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해외 전문가들의 눈길이 닿기 어려운 제주에 있는 코스는 핸디캡이 훨씬 더 많았다. 김 대표는 “100대 코스 선정위원들이 골프장을 봐야 하는데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돈을 많이 투자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었다. 항공권과 체재비를 주고 선정위원들을 초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권위 있는 레스토랑 가이드북인 미슐랭 가이드의 평가위원이 공짜 음식을 먹으면 안 되듯 100대 코스 선정위원도 골프장에서 접대를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나인브릿지가 100대 코스에 들어가는 것은 현대조선소에 있는 농구 선수를 빼내오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김 대표는 외국인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아 월드클럽챔피언십(WCC)을 만들었다. WCC는 세계 유명 클럽 회원들이 골프 실력을 겨루는 아마추어 대회다. 클럽에 소속된 선정위원들이 대회 참가차 제주로 와서 나인브릿지 코스를 둘러볼 기회를 만든 것이다. LPGA 투어 나인브릿지 클래식도 만들었다. 나인브릿지의 아름다운 전경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방송에 노출됐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다. 전통이 있는 명문 클럽들은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나인브릿지에도 필요했다. 이재현 CJ 회장은 그에게 “길고 넓게 보라. 매년 한두 번 해외 최고의 코스에 가서 보고 눈높이를 높이라”고 사람을 키우는데 소홀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영국·미국·아일랜드·호주·뉴질랜드·스페인 등의 최고 코스를 돌아다녔다. 10년에 걸쳐 세계 100대 코스 가운데 51개 클럽을 답사했다. 특히 최상위권으로 꼽히는 파인밸리, 오거스타 내셔널,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 페블비치, 뮤어필드, 로열 멜버른 등은 코스 곳곳을 샅샅이 살폈다. 그 덕에 나인브릿지는 100년이 넘는 코스들이 가진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다. 김 대표는 “그것이 국내의 다른 코스들과 나인브릿지의 가장 큰 차이”라고 했다.

클럽 나인브릿지는 2005년 골프 매거진 선정 세계 100대 코스에 95위로 이름을 올렸다. 골프 매거진은 격년으로 명문 코스를 선정하는데 2007년엔 60위, 2009년엔 55위로 순위가 뛰어올랐다. 더구나 많은 명문 코스를 섭렵한 김 대표 자신이 선정위원이 되었기 때문에 세계 100대 코스에 빛나는 나인브릿지의 위상은 더욱 확고해졌다. 최근 클럽 나인브릿지는 중국의 파인밸리와의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중국 파인밸리는 중국 내 최고 부자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폐쇄적 클럽이다. 세계 100대 코스인 나인브릿지의 지명도 때문에 파인밸리 측에서 교류를 요청했다고 한다. 중국을 움직이는 상류층과의 교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그에겐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경기도 여주에 만든 해슬리 나인브릿지를 또 다른 명문 클럽으로 만드는 것이다. 제주 나인브릿지가 코스에 초점을 맞췄다면 해슬리 나인브릿지는 클럽 문화에 중점을 뒀다. 마스터스를 개최하는 오거스타 내셔널처럼 명사들이 회원이 되는 프라이빗 클럽을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그는 상류층의 문화를 잘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명품 골프장을 만들려고 명품을 공부했다. 명품 잡지 4개를 구독하고, 명품 백화점을 뒤지며 브랜드를 외우고 장단점을 파악했다. 영어를 공부하고 뒤늦게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니도 있다. 김 대표는 “상류층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63세다. 다른 동료들은 대부분 은퇴했는데 그는 15년째 임원을 맡고 있다. 김 대표는 “배구 선수를 할 때부터 ‘노력을 하면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야구 관리부장으로 일할 땐 한 포지션에서는 단 한 명, 즉 1등 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15년간 임원을 유지한 비결이다.

여주=성호준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