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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충격, 출가·환속, 민주화운동 … 내 삶은 격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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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은 시인이 23일 서울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산문집 『나는 격류였다』 출간 기자간담회를 열기에 앞서 책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불과 7개월 전, 30권짜리 연작시집 『만인보(萬人譜)』를 완간한 고은(77) 시인이 새 산문집 『나는 격류였다』(서울대출판문화원)를 냈다. 잰 걸음이다. 최근 몇 년간 서울대 교양강좌에서 한 문학강연, 일본 석학 와다 하루키와의 대담 등 주로 자신의 육성이 생생한 원고들을 모았다.

 책 제목에서 ‘격류’는 불교철학에서 말하는 생명세계의 근본 존재 방식이다. 격류처럼 생멸유전(生滅流轉)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이를 제목으로 삼은 것은 한국전쟁 체험과 정신적 충격, 출가(出家)와 환속, 민주화운동 투신 등으로 거침없이 이어진 스스로의 생애가 격류 같다는 뜻에서다. 산문집은 이런 자전적인 내용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시론(詩論)을 밝힌 글의 모음집이기도 하다.

 23일 서울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연 기자간담회 자리. 고씨는 “도박에 빠지기라도 한 사람처럼 손을 가만 두지 못하겠더라”고 했다. 절로 써졌다는 것이다. 또 “나는 왜 이리 빈약한 것만 세상에 내놓는지. 시에 관한 글이 많은데 새 책이 시론이라는 이름에 제대로 부합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주인을 만난 개의 흔드는 꼬리, 가을밤 새벽까지 울어대는 벌레 같은 것들에서 느껴지는 지극한 정서를 어떻게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가, 그런 문제에 대한 고민이 담긴 책”이라고 설명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지난 주말 “남북이 통일되면 내 나라를 떠나 민족을 잊고 싶다”고 한 ‘전북 군산 발언’의 진의로 넘어갔다. 고씨는 “통일은 분단 체제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한반도가 새로운 운명을 맞이하는 것일 텐데 그럴 경우 민족 같은 단일가치는 없어지고 새로운 문명이 도래한다는 뜻에서 한 발언”이라고 말했다. “서구 제국주의의 짝퉁인 일본을 통한 근대화,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으로 인한 분단 등 20세기의 잔재가 통일로써 사라지는 것인 만큼 민족이라는 명제는 다 풀어지고 지금까지의 한반도는 사라진다는 뜻이었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의 우라늄 원심분리기 공개로 인한 위기에 대해서는 “한반도의 절실한 꿈인 비핵화가 무너진다면 큰 일”이라고 했다. 또 “핵 없이 통일에 10년 걸린다면 핵을 가지고서는 200년은 걸릴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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