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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벼랑에 몰린 ‘스캔들 메이커’ 베를루스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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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스캔들 메이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4) 이탈리아 총리가 벼랑 끝에 몰렸다. 성 추문과 마피아 연루 의혹 등이 잇따라 불거진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대한 상·하원의 신임 투표가 다음 달 14일로 예정된 가운데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이 바닥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료나 측근들의 이탈도 계속되고 있다. 21일(현지시간)에는 집권 자유국민당(PDL) 소속 마라 카르파냐(35) 기회균등부 장관이 다음 달 신임투표 직후 장관직을 사퇴하고 탈당하겠다고 밝혔다. 카르파냐는 베를루스코니 소유의 방송국에서 활동하던 전직 모델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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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신임투표는 각종 스캔들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베를루스코니가 상·하원에 서한을 보내 스스로 제안한 데 따른 것이다. 상원과 하원 중 한 곳에서라도 재신임안이 부결되면 내각 해산과 함께 조기 총선을 치르게 된다. 현재 상원은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PDL이 다수이나 하원의 경우 균형추 역할을 해온 이탈리아 미래와 자유당(FLI)이 총리에게 등을 돌려 재신임안이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

 베를루스코니의 위기는 지난달 불거진 미성년자 여성 댄서와의 성매매 스캔들이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지난 2월 루비(17)라는 모로코 출신 벨리댄서를 별장에 초대, 은밀한 시간을 가진 게 드러난 것이다. 또 루비가 절도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자 베를루스코니가 직접 전화를 걸어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손녀”라며 풀어주도록 지시했다는 폭로도 나와 그를 더욱 곤란케 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스캔들을 일으켜 부인 라리오 여사가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1994년 총리에 당선된 그는 취임 7개월 만에 뇌물수수 혐의로 도중 하차한 전력이 있다. 4년 뒤엔 불법 정치자금 조성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풀려났다. 마피아 조직과 정치적 후원을 대가로 모종의 혜택을 제공하기로 밀약을 맺었다는 설도 끊이지 않고 나온다.

 여성과의 스캔들 외에 구설도 잦았다. 2006년엔 “마오쩌둥 집권 시절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아기를 삶아 밭의 비료로 썼다”고 말해 중국 정부의 분노를 샀다. 지난해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볕에 까맣게 탄 남자’로 표현해 빈축을 샀다.

 하지만 그는 번번이 스캔들을 딛고 불사신처럼 되살아나 16년 동안 세 차례 총리직에 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수 기록이다. 뉴욕 타임스는 그런 그를 ‘탈출 마술의 명수’라 표현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베를루스코니는 어떻게 권력을 지켜왔는가’라는 기사를 통해 그의 장수 비결로 자본과 언론을 꼽았다. 그는 65억 달러(약 7조3500억원)의 재산을 보유해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 세계에서 70번째 부자다. 이탈리아 3대 민영 방송사를 포함해 신문사, 출판사, 영화 제작·배급사, 수퍼마켓 체인점, 프로축구단 AC밀란 등 150여 개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다. 베를루스코니가 소유한 방송 채널은 이탈리아 전체 TV 시청률의 50% 이상을 점유한다. 그는 이를 통해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자신의 입장을 전달해왔다.

 평범한 중산층 출신의 베를루스코니는 1960년대 건설 붐을 타고 세계적인 재벌로 일어섰다. 이탈리아 유권자들은 베를루스코니에게 2000년대 들어 추락하는 경제를 되살려 줄 것이란 기대를 걸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탈출 마술’도 이번만큼은 통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로이터통신은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지지율이 35%를 기록, 2008년 재집권 이후 최저치로 총리의 기행에 국민이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며 “정권 붕괴 조짐이 보인다”고 전했다.

이에스더·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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