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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종합 능력이 실력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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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수영
KAIST 뇌과학연구센터 소장,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

아주 오랜만에 대학 입시 수능 문제를 풀어 봤다. 그런데 대부분의 문제가 영역별로 학교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물어보는 ‘문제를 위한 문제’일 뿐, 일상생활이나 타 영역과의 관련성이 없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회적 요구는 크게 바뀌었는데 우리의 수능 문제는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이고, 대부분의 창의성은 다양한 지식을 종합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그런데 영역별로 제한된 ‘죽은 지식’을 외워서 답하던 학생이 다양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을까. 외국의 대학교수에게는 대부분의 한국 학생이 ‘주어진 문제는 잘 풀지만, 스스로 문제를 찾지 못하는 학생’으로 알려져 있다. 선두를 쫓아갈 때는 아주 뛰어나지만, 앞에 아무도 없으면 길을 잃기 쉽다. 그런데 한국은 이미 선두추격형 사회를 벗어나 자기선도형 사회로 접어들었다.

 수리과학이나 자연과학이 단순히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식과 정형화된 문제의 해법을 외우는 학문일 수는 없다. 미래의 과학기술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보다 나은 일상생활을 누리기 위해 자연과학 및 공학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 또한 과학기술 전문지식을 가르치는 이공계 대학 교수조차 학생지도와 미래 연구방향 설정 등에서 인문사회적 지식이 필요하다.

 13세 이전에 외국어를 배우면 다양한 언어가 융화되지만, 이후에 배우기 시작하면 자국어와 외국어가 두뇌 속에서 따로 동작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언어 학습에서의 결정적 시기가 지식 습득에서도 존재한다. 즉 발전의 초기 단계에 편향적 지식체계가 굳어지면 후에 이를 극복하기가 매우 어렵다. 실제로 뇌과학에서는 좁은 영역의 능력과 다양한 분야의 융합 능력이 늘 서로 같이 가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되고 있다. 다만 지식은 언어보다 훨씬 영역이 넓고 복합적이기 때문에 결정적 시기가 늦을 수 있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까지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지 못하면 종합적인 사고가 어려워진다.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와 이과로 나누면 문과적 또는 이과적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평생 동안 노력해야 한다.

 많은 사람은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수리과학 지식 중 대부분을 일생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이공계 대학 신입생조차 인수분해, 지수함수, 삼각함수, 미분방정식을 시험 이외에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시간을 낭비했을 뿐만 아니라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사용 예를 같이 가르치라는 말이다. 교육이론에서는 방법을 가르치기 전에 목적을 인지시켜야 학습능률이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사용 예는 다양한 일상생활에서 찾을 수 있으므로 일체형 지식체계 형성에 도움이 된다.

 다행히 최근 발표된 정부의 교육개편안이 고등학교에서의 편파적 지식 습득 해소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평가 방법의 변화가 제일 중요하므로, 이에 더하여 수능 문제를 대폭 개편해 영역별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영역이 복합된 문제로 바꾸기를 제안한다. 예로 한 문항이나 문항 군이 일상생활을 다루고 이 속에서 관련된 인문사회나 수학, 자연과학 지식을 종합해 문제를 풀게 하는 것이다.

이수영 KAIST 뇌과학연구센터 소장·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