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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엔 아시아 시장 공략, 전성기 되찾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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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호 22면

지난 5일,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에서 벤틀리의 신형 컨티넨털 GT 시승회가 열렸다. 신드바드가 태어난 나라로 알려진 오만은 최근 유럽인들 사이에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화창한 날씨와 중동 특유의 이국적인 풍광 때문이다. 유럽에서 비행기로 5시간 안팎이면 닿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오만의 해안가엔 호화 리조트가 앞다투어 들어서고 있다.

호화차 브랜드의 신화 벤틀리의 엔진개발 총 매니저 켄 스콧

시승회의 주인공인 신형 컨티넨털 GT는 4인승 스포츠 쿠페다. 신형으로 거듭나면서 안팎을 꼼꼼히 손질했다. 눈매엔 LED 주간 주행등을 둘렀고 격자무늬 그릴은 슬며시 치켜세웠다. 범퍼 디자인도 바꿨다. 테일램프는 보다 넓적해졌다. 인테리어는 특급호텔 스위트룸이 부럽지 않다. 결이 고운 가죽과 자연산 원목, 싸늘한 촉감의 알루미늄 패널을 적절히 섞어 꾸몄다.

신형 컨티넨털 GT는 벤틀리의 구원투수다. 최근 몇 년 사이 벤틀리의 판매는 급격히 떨어졌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영향이었다. 지난해 판매는 2007년의 절반 수준인 5000여 대에 그쳤다.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며 생산규모를 늘렸던 벤틀리에 위기가 닥친 것이다.

컨티넨털 GT

한국에서의 사정도 비슷하다. 벤틀리가 한국에 본격 상륙한 건 2006년부터. 한국계 미 풋볼선수 하인스 워드가 타는 차로 알려지면서 인기몰이를 했다. 대당 약 3억원의 고가 차지만 2007년엔 100대 넘게 팔렸다. 그러다 지난해부터는 판매가 줄고 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베틀리가 내놓은 야심작이 바로 컨티넨털 GT다. 시승행사가 열린 오만의 샹그릴라 호텔에서 컨티넨털 GT의 개발 총책임자 켄 스콧(사진·Ken Scott)을 만났다. 그는 벤틀리의 부활을 낙관했다.

-벤틀리는 어떤 브랜드인가?
“벤틀리는 1919년 월터 오웬 벤틀리가 영국에서 창업한 고급차 메이커다. 고성능 경주차와 주문 제작차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런데 29년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자금줄이 묶였다. 벤틀리는 파산 위기를 맞았다. 결국 31년 벤틀리는 롤스로이스에 인수된다. 이후 벤틀리는 롤스로이스의 스포츠 버전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이젠 폴크스바겐 그룹 소속이다.
“그렇다. 1997년 모기업 롤스로이스의 자동차 사업부문이 불황에 못 이겨 매물로 나오게 됐다. 벤틀리도 덩달아 운명의 갈림길에 섰다. 벤틀리 인수전에서 폴크스바겐과 BMW가 맞붙었다. 롤스로이스에 12기통 엔진 기술을 전수했던 BMW에 인수우선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폴크스바겐과 BMW 모두 벤틀리를 노렸다. 호화롭되 스포티한 이미지를 높게 샀기 때문이다. 치열한 협상 끝에 폴크스바겐이 벤틀리 상표권과 롤스로이스 공장을 거머쥐었다. BMW는 무형의 자산인 롤스로이스 상표권만 헐값에 사들였다. 폴크스바겐의 품에서 벤틀리는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한 해 고작 몇 백 대 찍어내던 롤스로이스 시절과 달리, 2007년엔 1만 대의 벽마저 넘어섰다. 호화차 브랜드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벤틀리 컨티넨털 시리즈의 특징은?
“컨티넨털 시리즈는 벤틀리 부활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쿠페와 세단, 컨버터블의 각기 다른 모습으로 차례차례 선보였다. 그러나 모두 같은 뼈대와 엔진, 사륜구동 시스템을 쓴다. 효율을 높여 소량생산의 단점을 상쇄시키기 위해서다. 컨티넨털 시리즈의 인기 비결은 모기업 폴크스바겐의 기술력과 벤틀리의 수작업 공정이 황금비율로 어우러진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잠시 신형 컨티넨털 GT를 언급했다. 그는 “GT의 엔진은 이전과 같은 W12 6.0L이다. 그러나 최고출력은 15마력, 최대토크는 8%나 치솟았다. 엔진 부품의 무게를 줄이고 각 부위의 마찰을 낮춘 결과다. 변속기는 기어 갈아타는 시간을 더욱 줄였다. 급가속 땐 두 단을 성큼 내려서는 기능도 담았다. 반응이 더 빨라졌고 고속에서의 가속이 한층 힘차졌다”고 강조했다.)

-최근 몇 년간 벤틀리의 판매가 급격히 떨어졌다.
“2008~2009년은 벤틀리에 아주 힘든 시기였다. 우리로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벤틀리의 직원이 발 벗고 나섰다. 우선 나를 포함한 전 직원이 10%의 급여 삭감에 동의했다. 아울러 수당 없이 잔업에 나섰다. 동시에 정규직의 추가 고용은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앞으로 시장 상황은 어떻게 전망하나?
“불경기로 고급차 시장이 많이 축소됐다. 그러나 분명히 회복될 것이다. 전성기 때 수준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시간은 꽤 걸릴 것이다. 올해의 목표는 6000여 대다.” (한국에선 지난해 88대가 팔렸다. 내년 목표는 100대 정도다. 그는 신형 컨티넨털 GT에 많은 기대를 했다. 한국 판매 가격은 2억9100만원으로 책정됐다.)

-벤틀리가 가장 관심을 두는 시장은?
“벤틀리의 가장 큰 시장은 미국이다. 그 다음이 영국이다. 중국은 세 번째인데, 내년 제2의 시장으로 올라설 전망이다.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중동은 벤틀리에 아주 중요한 시장이다. 최근 남미와 인도에 주목하는데, 우린 아직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불경기로 신차 개발이 연기되지는 않았나?
“아니다. 오히려 더 철저히 지켰다. 신차만이 불황을 헤쳐갈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벤틀리의 최고급 세단인 뮬산이 데뷔했고, 이번엔 신형 컨티넨털 GT를 선보이게 됐다. 이어서 컨버터블인 컨티넨털 GTC와 세단인 플라잉스퍼 신형도 순차적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벤틀리는 값비싼 폴크스바겐’이란 지적이 있다.
“우리 같은 소규모 고급차 메이커엔 자본력이 튼실한 모기업의 존재가 절실하다. 원가절감에 연연하는 순간, 브랜드 이미지가 삽시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벤틀리는 폴크스바겐의 인프라와 기술을 적극 활용한다. 폴크스바겐을 벤틀리로 포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벤틀리를 더욱 벤틀리답게 만들기 위해서다. 차체만 독일의 폴크스바겐 공장에서 가져올 뿐, 모든 벤틀리는 영국의 크루 공장에서 수작업 방식으로 만든다. 접근방식부터 다른 차다.”

-폴크스바겐 그룹에서 벤틀리의 위상은 어떤가?
“그룹 이미지를 격상시키는 존재로 인정받아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지난해 공개된 뮬산이 좋은 예다. 폴크스바겐과 전혀 상관없는 뼈대와 엔진을 쓴다.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든다. 뮬산이 양산된다는 건, 폴크스바겐 그룹에 벤틀리의 존재가 각별하다는 방증이다.”

-컨티넨털 시리즈는 12기통 엔진을 얹는다. 친환경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우리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상식 이상의 성능과 호화로운 외모 때문에 좀처럼 관심 받지 못할 뿐이다. 가령 모든 컨티넨털 시리즈는 휘발유에 에탄올을 15% 섞은 E85를 연료로 쓸 수 있다. E85를 넣어도 성능과 정숙성, 내구성엔 전혀 차이가 없다. 아울러 내년엔 컨티넨털 시리즈에 보다 친환경적인 8기통 4.0L 엔진을 얹을 계획이다. 폴크스바겐 그룹이 새로 개발한 엔진인데, 벤틀리가 처음 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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