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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위협하는 드라마의 정치 폄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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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정승재
정치평론가·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회장

한 상업방송에서 방영하고 있는 정치드라마가 시청률 20%대를 오르내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국회의원의 활동무대인 정당과 국회가 주된 콘텐트다. 하지만 정치를 지나치게 희화화하거나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 같다. 없었거나 정리되어야 할 과거의 모습을 오늘의 실제적 정치 트렌드로 묘사한다. 흥미를 생명으로 하는 드라마의 속성을 감안하더라도 ‘픽션’의 정도가 지나치다. 시청자에게 정치 혐오감을 가지게 할 만하다. 상황 설정이 현실과 너무나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정당의 대표가 고가의 미술품을 매개로 축재했고 혼외의 딸을 두고 온갖 부정을 저지른 이력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사람을 죽인 살인교사까지 강하게 풍겼다. 그런 사람을 유력한 대권후보 반열에 올려놓았다. 국민을 어리석게 만드는 표현이다. 가슴과 열정 없는 권력의 하수인으로 처신하는 국회의원에다 간접적으로 그 부인은 호스트바를 드나드는 사람으로 암시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은 국민을 우롱하는 얘기다. 들키지 않은 부정도 있겠지만 그 정도의 지도자나 후보였다면 유권자가 용인하지 않는다. 정도를 넘긴 과장이다.

 선악(善惡)이 또렷해야 하는 드라마라는 표현방식에 한계가 있겠지만 정당의 의사결정이나 당론 채택 절차를 너무나 허술하고 졸속으로 그린다. 한 초선의원이 당 대표에게 전화 한 통화로 당 정책을 쥐락펴락한다. 현존하는 어떤 정당도 그렇게 어설프게 정책을 만들지 않는다. 음모로 다음 번 총선에서 일정한 공천권을 확보하고 지방선거에서 경쟁관계인 상대당 대표에게 상상할 수 없는 거액의 정치자금을 건네는 젊은 정치리더의 이야기도 있다. 더 예리해진 언론의 감시와 국민의 관심으로 하루가 다르게 정치적 위상이 변하는 지금의 정치적 역학구도상 있을 수 없는 비약이다.

  물론 이 모두가 그동안 국회나 정치인이 보인 부정적인 역정(歷程)과 행보에서 비롯됐다는 정치권의 자조적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들의 업보다. 하지만 국회 활동을 포함한 정당정치를 질시의 대상이나 몹쓸 행태로 고착화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깨뜨리는 원인(遠因)이 된다. 국가발전에도 도움이 못 된다. 삼권분립하에서 비대해진 행정부의 견제기능을 가진 국회의 권능을 필요 이상으로 비하하거나 폄훼하면 권력의 균형이 깨진다는 말이다. 선거에 무관심하게 만들고 투표에 의한 선택권의 가치를 무너뜨린다.

  크게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개인에게도 정치가 있다. 엮고 맺힌 타인과의 이해관계를 헤치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익혀 나가는 삶의 여정이다. 심지어 인간의 1차관계인 가족 간에도 정치가 존재한다. 생활의 지혜와 슬기를 배우는 끊임없는 기획과정이기도 하다. 현장의 몰이해에다 왜곡된 콘텐트로 시청자, 특히 세상을 열어가는 청소년들에게 정치를 ‘비아냥’의 대상으로 각인시켜서는 안 된다. 더욱이 혹여라도 선정(煽情)과 정치권에 대한 대리만족을 매개로 시청률을 올리겠다는 의도가 있다면 비겁한 일이다.

정승재 정치평론가·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