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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찰 대금은 맞출 수 있지만 … ‘외부 조달 3조원’ 사후 관리 잘할지가 관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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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현대그룹이 16일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현대그룹은 5조5100억원의 입찰액을 써내 경쟁자인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쳤다. 사진은 현대그룹이 올 3월 새롭게 둥지를 튼 서울 연지동 본사 전경. [뉴시스]

현대건설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현대그룹이 애초 예상보다 훨씬 많은 5조5100억원을 써내면서 시장의 관심은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쏠리고 있다. 그룹 규모에 비춰볼 때 매우 많은 액수이기 때문이다.

◆입찰대금 낼 수 있나=이번 인수전에 공식적으로 뛰어든 현대그룹의 계열사는 현대상선·현대엘리베이터·현대증권이다. 세 회사가 최근 공시한 3분기 말 기준의 현금성 자산(단기금융상품·단기투자자산 포함)을 합치면 1조3756억원이다. 현대건설 입찰가의 4분의 1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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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그룹은 그래서 본입찰을 앞두고 자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이 주로 총대를 멨다. 지난달 22일 회사채 4500억원 발행을 시작으로 신탁 해지(3778억원), 계열사인 현대부산신항만 주식 매각(2000억원), 유상증자(3968억원)를 잇따라 발표했다. 기업어음(CP) 5000억원어치를 발행하고, 단기차입금도 1680억원 늘렸다. 현대엘리베이터도 회사채(1000억원)·CP(800억원)를 발행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추가 자금 확보액을 모두 더하면 2조2726억원이다.

 그래도 5조5100억원까지는 1조8600억원 정도가 모자란다. 현대그룹은 그래서 동양종합금융증권과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을 끌어들였다. 나티시스는 현대그룹이 독일 M+W그룹과의 이견으로 헤어진 뒤 새로 끌어들인 투자자다. 재계 관계자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중동보다는 유럽계 자금 유치를 선호했던 것으로 안다”며 “그룹 전략기획본부장인 하종선 사장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채권단과 현대그룹은 두 투자자로부터 유치한 금액을 밝히지 않았다. 시장에선 동양종금증권은 7000억원, 나티시스는 최대 1조2000억원 정도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양쪽에서 최대 액수를 유치한다면 현대그룹이 쓸 수 있는 전체 자금은 5조5482억원 안팎이 된다. 입찰 가격과 거의 맞아떨어지는 액수다.

 ◆무리한 투자유치 없었을까=문제는 가진 돈을 몽땅 현대건설에 쏟아부으면 기존 계열사 운영은 어떻게 하느냐는 점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들은 “그 점을 생각하지 않고 자금 조달에 나선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대그룹이 또 다른 투자자를 유치했거나, 아니면 다른 자금 확보 통로를 마련해두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입찰금액 가운데 총 3조원 안팎이 차입 또는 외부 투자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현대그룹이 이번 입찰에 참여한 투자자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이자나 무리한 조건을 제시했다면 자칫 모기업마저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대우건설을 인수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그런 경우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대상선의 경영 사정이 나아졌다지만 아주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진 못했을 것”이라며 “한 해 이자만 수천억원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그룹 측의 주장은 다르다. 그룹 관계자는 “외부 투자자와 터무니없는 계약을 했다면 한국정책금융공사를 비롯한 채권단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겠느냐”고 반문했다.

 ◆범현대가, 유상증자 딜레마=현대그룹의 자금 마련 방법 중에는 현대상선의 유상증자가 포함돼 있다. 총 3968억원어치의 주식을 발행하며 우리사주조합에 20%, 기존 주주에게 80%를 배정한다. 그런데 현대상선 주요 주주에는 현대중공업(17.6%)·현대삼호중공업(7.87%)·KCC(5.04%) 등 범현대가 기업이 포함돼 있다. KCC는 2003년 현대그룹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고, 이어 2006년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상선 지분을 인수하면서 현대그룹의 경영권은 또 한 번 위기를 맞았었다.

 이들 범현대가 기업이 다음달 23일 증자에 참여할 경우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자금 마련을 돕는 격이 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을 합쳐 약 877억원, KCC는 약 173억원을 내야 한다. 반대로 증자에 참여하지 않으면 지분율이 낮아져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 경영권을 더 탄탄하게 만들어주게 된다. 현대중공업·KCC 관계자들은 “아직 증자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이들 기업이 증자에 참여할 가능성이 그러지 않을 가능성보다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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