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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식물종 20% 서식 … 400년 손 안 탄 원시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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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점봉산 유전자원보호구역에서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 양희문 박사(오른쪽)가 취재팀과 함께 나무 지름을 측정하고 있다. 얼레지·모데미풀·투구꽃등 봄에서 가을까지 다양한 야생화가 피고 지는 점봉산은 ‘천상의 화원’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인제=오종택 기자]

지난달 13일 취재팀이 찾은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점봉산(해발 1424m). 빨갛고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당단풍나무들이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를 맞고 있었다.

 동행한 국립산림과학원 양희문 박사는 곰배령(해발 1110m)으로 이어진 탐방로를 걸으며 나무들을 소개했다. 그는 “수피(나무껍질)가 하얀 것이 자작나무, 그 옆에 수피가 주홍색인 것이 거제수나무”라며 “서어나무가 크게 자라고 있다는 것은 이곳이 오래된 숲이란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황벽나무·가래나무·까치박달나무·다릅나무 등 양 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숲 속에는 지름이 1m 가까이 되는 300살의 피나무를 비롯해 아름드리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었다. 숲 바닥에는 40~50㎝ 길이의 초록색 속새가 대롱처럼 삐죽삐죽 자라나 있었다. 양 박사는 “얼레지·모데미풀 등 다양한 야생화가 피고 지고, 국내 식물종의 20%인 820여 종이 서식하는 점봉산은 말 그대로 야외 식물원”이라고 말했다.

 점봉산에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는 것은 한반도 자생식물의 남방·북방한계선이 만나는데다 숲과 계곡이 잘 어울린 덕분이다. 우거진 숲과 계곡으로 인해 공기 중의 습도가 높게 유지돼 다양한 식물이 자란다. 계곡 물도 차고 시원해 열목어가 노닌다.

 설악산 남쪽 백두대간 상에 위치한 점봉산은 산림청이 지정한 전국 376곳(총 11만1850㏊) 유전자원보호림 중 첫째로 꼽힌다. 점봉산은 1987년 유전자원보호구역(2369㏊)으로 지정됐다. 미래에 유용하게 쓰일 유전자원을 철저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다.

 산림청 오기표 산림환경보호과장은 “점봉산은 고산지대에 위치하고 접근이 어려워 300~400년 이상 사람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훼손되지 않아 국내에서 원시림에 가장 가깝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훼손을 막기 위한 노력=2006년 9월 완공된 양양 양수발전소의 상부댐 건설 과정에서 보호구역 밖이긴 하지만 점봉산도 숲 19㏊가 훼손되기도 했다. 양수발전소는 심야시간 전기가 남아돌 때 양양군 서면에 있는 하부댐의 물을 점봉산의 상부댐으로 끌어올렸다가 819m의 낙차를 이용해 발전하는 시설이다.

 현재 점봉산은 하루에 100명까지만 탐방할 수 있다. 전화예약을 해야 하고 수~일요일 정해진 시간에 생태안내원과 동행해야 곰배령까지 5㎞를 탐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통제에도 곰배령의 헬기장 주변은 사람들의 발길로 파헤쳐져 있었고, 낮은 지역에서만 자라는 질경이 같은 잡초도 보였다. 점봉산 생태해설가인 서종만(59)씨는 “곰배령에 나무데크를 200m 정도 설치해 땅을 밟지 않고 데크로만 다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보호림 입구에 ‘점봉산 생태관리센터’가 설치되면서 더욱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게 됐다. 내년 1월부터는 전화와 함께 인터넷 예약 시스템을 도입하고 생태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국립공원 구역 조정작업을 진행 중인 환경부는 점봉산의 807㏊를 설악산국립공원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나로 묶어 관리하면 효율적이라는 게 환경부의 주장이다. 하지만 산림청에서는 “국립공원에 편입되면 숲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며 편입에 반대하고 있다. 유전자원보호구역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도 엄정 자연보호지역(카테고리 1)으로 분류할 만큼 철저히 보호되는 곳이지만 국립공원(카테고리 2)은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게 산림청의 주장이다.

인제=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본 기사 취재는 복권기금(산림청 녹색자금)의 지원으로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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