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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자체 정수시설, 가동 중단하는 곳 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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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수돗물을 아파트 자체 정수처리시설로 한 번 더 걸러 샤워할 때 피부의 자극을 줄여 주고 아파트 배관의 수명을 늘려 줍니다.”

 건설업계에 ‘명품 아파트’ 붐이 일어난 2004년 이후 분양 광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다. 수돗물이 아파트 단지의 지하 저수조에 저장되기 전 자체 중앙정수처리장에서 한 번 더 걸러 “더 깨끗한 물을 공급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중앙정수처리장을 갖춘 아파트들이 하나 둘씩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 비싼 유지·관리비에 비해 정수 효과가 없다는 검사 결과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내에 중앙정수처리장을 설치한 아파트(203곳) 중 현재 69%(141곳)만이 정수처리장을 사용하고 있다. 이정관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장은 15일 “올해 들어 상수도사업본부의 수질 검사를 받고 가동을 중단한 아파트 단지만 세 곳”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곳이 잠실동 잠실 2단지 재건축 아파트 단지인 ‘리센츠’(5563가구)다.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이달부터 정수처리장 가동을 중단했다. 아파트 단지 지하에 8500t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4개의 탱크 앞에 정수처리장을 설치하는 데 20억원을 지출하고 필터교체, 청소 등 유지·관리비로 매달 800만원을 전문 청소용역업체에 지불했다.

최영재 입주자대표회 부회장은 “분양 광고대로 물이 더 부드럽다거나 좋은 느낌이 없고 관리비가 비싸게 나가는 것 같아 상수도사업본부에 수질 검사를 요청했고, 그 결과 정수 처리하기 전후의 물 모두가 ‘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옆 잠실 3단지 트라지움(3600가구)도 비싼 돈 주고 외주 용역업체에 맡기던 정수처리장 관리를 필터만 교체하는 식으로 자체 관리하기로 해 관리비를 절약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파트 중앙정수처리장은 촘촘한 필터에 물을 거르는 ‘여과장치’와 소금을 넣어 부드러운 물로 바꿔 준다는 ‘정수연화장치’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정수장에서 이미 정수 처리해 물의 탁도(흐린 정도) 기준을 통과한 수돗물을 다시 여과할 필요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수질 검사 결과 리센츠는 아파트 정수처리장을 통과한 물의 탁도가 오히려 전보다 높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민승 상수도사업본부 고객지원부장은 “정수기 관리를 전문가가 하지 않고, 필터를 자주 교체하지 않는 등 관리가 소홀할 경우 물이 더 오염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은 칼슘·마그네슘 등 금속 이온이 포함된 정도에 따라 경도를 분류한다. 맛이 부드러운 ‘연수’일 경우 경도가 0~75㎎/L다. 상수도사업본부의 검사 결과 서울 수돗물의 경도는 70㎎/L로 연수에 속한다. 따라서 정수연화장치를 통해 더 정화할 필요가 없다. 이 부장은 “연수로 만들기 위해 소금을 넣어 물을 한 번 더 정화하는 과정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나 16㎏당 1㎏의 물을 폐수로 버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현대건설·삼성물산·대우건설 등 27개 건설사와 함께 중앙정수처리장치 설치를 자제하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정수처리장치 관리를 부실하게 함으로써 수돗물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관 본부장은 “중앙정수처리장치가 설치된 아파트 주민들은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로 연락하면 기술 자문이나 수질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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