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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병의 무전기 ‘등짐’ IT로 벗겨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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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첨단 기술은 군사적 필요에 의해 개발된 경우가 많았다. 순수 과학적 목적이라 해도 처음 응용한 곳은 군(軍)이기 일쑤였다. 현재 널리 상용화된 기술들은 실제로는 군에서 먼저 쓰다가 민간으로 ‘스핀-오프(spin-off)’된 것들이다. 원자폭탄 기술은 원자력 발전에 평화적으로 쓰이고, 미사일용 정밀센서는 이제 흔한 동네 폐쇄회로TV(CCTV)에 들어 있다.

 정보기술(IT) 분야는 더욱 그렇다. 미국 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라는 기관에서 개발된 군사용 네트워크는 군사작전의 소통 도구로 쓰이다 인터넷으로 변형 발전해 세상을 바꿔 놓았다. 차세대 ‘비익성(정보기관이 쓰는 용어로 비밀 유지 필요성)’ 차원의 군 통신을 위해 개발한 대역확산기법(Spread Spectrum Technique)은 우리나라가 처음 상용화한 부호분할다중접속 (CDMA) 방식 기술의 원조가 됐다. 지금은 일반화된 방범·방재 시스템이나 IT를 이용한 기업 품질관리 시스템 등은 실제로 군이 수십 년 전에 쓴 ‘C3I(Command, Control, Communication and Intelligence)’ 개념에서 비롯됐다. 통신·정보(Communication and Intelligence)를 지휘·통제(Command and Control)와 동격에 놓고 그 요소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작전 개념이다. 기억하기조차 어려운 군사전문용어가 민간으로 전파돼 산업과 일상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런데 근래 첨단 IT가 군이 아닌 민간에서 개발되는 경우가 늘었다. 상용 휴대전화의 원조는 군용 무전기였다. 하지만 이제 휴대전화는 애플 아이폰처럼 기술의 장벽을 넘어 ‘예술’의 경지로 승화·발전한다. 인터넷의 정보 검색과 각종 애플리케이션·내비게이션·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등은 민간에서 이룩한 신기술이다.

 오히려 역으로 이런 상용 IT를 군에 적극 활용할 때가 됐다. 현재 군 복무를 하는 청년들은 최신 IT를 경험한 세대다. 군이 어떤 첨단기술을 도입해도 그것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췄다. 물론 군에는 보안 때문에 IT를 바로 사용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기존 상용망과는 별개의 망을 이용하고, 여기에 유·무선을 통합하며, 군에서 자체 개발한 ‘비익성’을 추가하면 그런 제약은 해소될 수 있다. 또 군사환경에 맞게 일부 장비들을 ‘군용 규격(Mil-spec)’화할 필요도 있다.

 우리나라는 육·해·공 3군을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려고 ‘통합군’을 구상하고 있다. 좁은 국토에서 3군의 통일되고 일관된 작전수행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군에는 미군과의 연합작전을 해야 하는 특수 사정이 있다. 통합군이 원활한 연합작전을 수행하려면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에게도 명령을 지시하고 하달받을 수 있는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능력이 필수적이다. 이런 능력을 갖추려면 군의 IT나 C3I는 새롭게 변모해야 한다. 이는 기존의 작전을 전산·자동화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새로운 IT에 맞춘 새로운 작전 운용개념을 도입한다는 뜻이다.

필요하다면 기존의 표준운용수칙(SOP)도 바꿔야 한다. 우리 군은 이제라도 뛰어난 통신망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는 한편 유사시 인공위성과 민간통신망 등을 이용하는 ‘유비쿼터스’(언제 어디서나 정보 교류) 통신체제를 갖춰야 한다. 등에 무겁게 무전기를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지휘관을 쫓아다니는 통신병의 모습은 이제 슬슬 사라져야 할 때다. 군의 선진화는 ‘IT 강군’에서 시작된다. 우리 군이 세계 최강이 되는 지름길을 ‘IT와의 융합’에서 찾아야 한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