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안상수 대표의 감세 논쟁 절충안에 주목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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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청와대의 부정적 입장으로 한동안 잠복했던 ‘부자감세’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원칙대로 감세로 가되 1~2년 연장 여부는 그때 경제 사정을 봐서 하자”고 말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소득세 최고세율은 현행 세율을 유지하고, 법인세 최고세율은 내리자”는 입장을 밝혔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1억원이나 1억2000만원의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을 새로 만들어 현행 35%의 세율을 적용하자”는 절충안(折衷案)을 제시했다. 민주당 등 야권은 꽃놀이패를 즐기는 분위기다. 감세 철회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여권 내분을 지켜보고 있다.

 원칙대로라면 감세 철회는 안 될 일이다. 국회는 지난해 감세안을 통과시키면서 이른바 ‘부자감세’ 부분만 유예시켰다. 소득세 과세 표준 8800만원 초과, 법인세는 2억원 초과 구간에 대해 2%포인트씩 세율을 깎는 것을 2013년으로 미루자는 야당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정책의 일관성을 따져도 감세는 당연하다. 야당 역시 2년 전 부가가치세 감세안까지 내놓으며 감세 논쟁에 뛰어들지 않았는가.

 문제는 현실이다. 감세 논쟁이 정치적 사안으로 비화된 이상 덮고 넘어가기 어렵게 됐다. 2년 전 글로벌 경제위기 때와 달리 재정건전성 문제가 불거진 것도 사실이다. 감세 효과를 둘러싼 논란은 세계 경제학계의 오래된 숙제다. 감세가 경제위기 극복에 효과를 발휘했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이제 정치적 논리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차선책(次善策)을 찾아볼 때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한나라당 안 대표의 절충안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아닐까 싶다. ‘부자 감세’라는 낙인(烙印)부터 지우고, 법인세와 소득세를 나눠 접근할 필요가 있다. 법인세는 경제 활성화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다. 대만이 올해 법인세를 8%포인트 인하하고, 중국·홍콩·말레이시아가 법인세를 내리면서 외국 기업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가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 폐지를 밀어붙이는 마당에 기업들이 떠안을 부담을 외면해선 안 된다.

 소득세율 최고 구간 신설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니다. 현재 최고세율의 4%가 전체 종합소득세의 67%를 부담하고 최저세율 구간(과표 1200만원 이하)의 73%가 5%를 부담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주요 선진국들이 과표구간 수를 줄이면서 단일 세율로 가는 흐름과도 배치된다. 하지만 그동안 물가상승률과 소득증가를 고려해 과표 구간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과세표준 8800만~1억원 정도의 소득자가 과연 초고소득층인지, 중산층인지 되짚어 볼 때가 됐다.

 감세 논쟁이 정치문제화되면 포퓰리즘에 오염되기 십상이다. 우리의 현실과 경제 환경을 감안해 조속히 논란을 매듭짓는 게 바람직하다. 이 대통령의 “감세 논쟁이 이념적 논쟁으로 가선 안 된다”는 지적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가이드라인이다. 정치권이 재정건전성을 따진다면 세원(稅源) 확대에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참고로 우리의 세금 연체액은 37조원, 지하경제 규모는 300조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수치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줄여도 재정건전성 문제는 단숨에 해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