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들고 풍차를 향해 달려가는 돈키호테 같았다. 중과부적 앞에 후퇴하지 마라, 사수하라, 공격하라는 억지 명령은 독일군과 국민의 희생만 늘렸다(요아힘 페스트, '히틀러 최후의 14일').
히틀러에게 조금이라도 현실을 일깨우려는 장군들은 배반자로 몰리기 십상이었다. 그에게 배반자로 낙인찍혀 바로 총살당한 벙커의 측근도 있었다. 정직한 보고는 금물이었다. 힘의 숭배는 히틀러 권력의 본색이었다. 그에게 힘은 어떤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 자체가 목표였다. 히틀러가 민족지상주의자.국가주의자라고 하지만 그런 가치들도 힘의 정의 앞에선 무색했다.
"전쟁에 패배한다면 독일 민족은 몰락하고 파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민족은 허약한 것으로 판명났고 그렇다면 미래는 더 강한 동부 민족(소련)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그가 죽기 두 달쯤 전에 한 말이다.
과대망상 권력은 비현실적인 현실인식으로 세상을 위기에 빠뜨린다. 힘을 숭배하는 권력은 방향감각 없는 흉기여서 세상이 무한 공포에 떤다. 며칠 전 모스크바에서 있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60주년 기념행사엔 다시는 히틀러 같은 권력이 나타나선 안 된다는 인류의 다짐 같은 것이 배어 있다. 거기에 참석한 쉰네 나라의 권력 정상은 히틀러를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 일부 있을 것이다. 특히 초청받고도 불참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히틀러한테 새겨야 할 교훈은 적지 않을 것 같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