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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로켓공학의 아버지 베르너 폰 브라운(1)

중앙일보

입력

로켓공학의 아버지로 통하는 독일 출신의 폰 브라운은 오늘날 인공위성을 우주공학을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과학의 윤리를 둘러싸고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앞서 지적했던 독가스 과학자 프리츠 하버는 자신의 종교, 심지어 가족까지 버려가면서 모든 것을 조국에 헌신했다.

그러나 1차 대전이 역사적인 평가로 볼 때 침략전쟁이라는 낙인이 찍혀서 그렇지 만약 그가 영국이나 미국의 과학자였다면 그의 과학은 조국을 수호해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로켓폭탄으로 런던을 공격하다

조국이 같은 독일이면서도 하버와는 상반된 위험한 과학자가 있다. 로켓 공학의 천재로 오늘날 우주탐사를 가능하게 만들어 우주공학의 아버지로 존경 받는 베르너 폰 브라운(1912~1977)이다. 왜 그가 위험한 과학자, 나쁜 과학자로 지탄받아야 할 대상인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왜 나쁜 과학자인지에 대해 결론부터 간단히 내리고 조금씩 자세히 이야기를 풀어나가자. 그렇게 본다면 과학자에 대한 역사의 왜곡으로 인해 그를 잘못 이해했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우선 그는 2차대전의 주역 히틀러 치하에서 나치 독일의 최신예 무기인 로켓폭탄에 대해 연구하고 제조한 책임자다. 살상력에서 본다면 하버의 독가스는 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면 왜 조국 독일을 위해 한 일인데 우리는 화학자 하버에게는 무차별 공격을 퍼부으면서 폰 브라운에 대해서는 관대한가? 과학적 업적이 폰 브라운이 더 크고 많았기 때문일까?

아니다. 업적으로 보자면 인공질소비료를 가능하게 만든 하버의 업적이 로켓공학보다 더 크다. 과학의 목적이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키는데 기여하는 일이라면 말이다.

로켓공학의 천재였던 그는 당시 런던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소위 날아다니는 폭탄인 V1, 다시 그보다 엄청난 파괴력을 V2를 만들어냈다. 당시 영국 사람들은 이 폭탄을 개미귀신으로 불렀다.

조종사 없이 ‘날아다니는 폭탄’의 주인공

나치 히틀러 치하에서 폰 브라운만큼 대접받은 과학자도 없다. 독일 고위 장성들은 그의 로켓기술이 기울어지는 전세를 역전시켜 나치 독일에 커다란 희망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래서 그를 자주 찾았다.

조종사가 없이 날아와 런던시내를 무차별하게 박살내는 날아다니는 무인(無人)폭탄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폭탄은 네덜란드에서 발사되었다. 오늘날의 탄도로켓 유도탄과 인공위성 발사용 로켓은 모두가 V2에서 발전된 것이다.

V2는 처음에는 A-4라고 불렀다. 노르망디 전투패배로 전세가 점차 기울게 되자 독일은 이 폭탄의 이름을 V2로 바꿨다. V2는’복수의 무기(Vergeltungswaffe, vengeance weapon)’를 상징한다. 연합군의 공격으로 수세에 몰린 독일은 이 무기가 영국과 미국연합군을 한방에 날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우주탐사를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 바로 폰 브라운의 과학에서 나왔다. 그는 이차대전 이후 미국 육군병기공장에서 유도탄 연구 책임자로 일했으며 NASA에 소속되어 아폴로 계획을 위시한 우주계발계획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그의 과거행적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이처럼 오늘날 세계 최대 과학기술국인 미국이 독일에 진 빚은 대단하다. 핵무기기술, 그리고 오늘날 가전제품뿐만 아니라 모든 정보기기를 가능하게 한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물리학의 원산지도 바로 독일이다. 의학은 말할 것도 없다.

노예노동을 착취해 수만 명의 죽음을 방치해

둘 째 그는 노예노동을 착취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다. 우리는 보통 나치의 잔혹한 행동을 죽음의 수용소의 가스실을 생각한다. 그리고 유대인 대다수가 바로 이 가스실에서 살해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각종 무기공장이나 산업현장에서 무리한 노동시간, 영양실조, 불결한 위생시설로 인해 엄청난 수의 유대인이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히틀러의 비밀연구소로 불린 페네문데 비밀실험기지에는 강제 동원된 수만 명의 노예노동자가 강제노역과 굶주림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수 없이 죽었다. 로켓폭탄제조를 지휘한 폰 브라운은 이를 방치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또 다른 하나가 더 있다. 2차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러 미국이 먼저 이곳을 접수했다. 이 때 폰 브라운은 지체하지 않고 조국 독일 최고의 과학기술을 미국에게 바쳤다. 그의 기술만이 아니다. 페네문데의 모든 것, 로켓 설계도를 비롯해 그리고 당시에 그곳에 있던 로켓 몸체까지도 바쳤다. 그리고 수백 명에 이르는 기술 종사자들을 설득해 미국으로 이끌고 갔다.

일부 역사가들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미국은 당시 독일의 로켓기술을 소련보다 먼저 접수하는데 성공했다. 더욱 성공적인 것은 히틀러의 비밀 무기제작소인 페네문데를 통째로 미국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아주 손쉽게 미국 땅에 페네문데를 세울 수가 있었다”

폰 브라운의 선택을 어떻게 봐야 할까? 독일이 패전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그는 자유를 갈망한 학자였을까? 그래서 독재자 히틀러 독일의 로켓과학을 자유주의자 미국에 아낌 없이 바치는 것은 지극히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그의 판단은 어떤 양심에서 온 것일까? 아니면 전쟁에서 이긴 미국의 말을 안 들었다가는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명에도 지장이 있을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을까? 그는 그러면서 죽어가는 수만 명의 노예노동자에게는 왜 등을 돌리고 철저히 외면했을까?

폰 브라운을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인간적인 양심을 버리고, 조국까지 배반한 과학자라고 지적한다면 로켓공학의 아버지라는 명성을 훼손하는 일일까? 과학자는 위대한 발견이나 발명만 하면 그가 했던 어떤 나쁜 일도 덮어버릴 수 있는 사람들일까?

그렇다면 처음부터 휴머니티를 과학자에 적용시키는 것은 잘못된 일인지도 모른다. 연구실에 박혀 뭔가를 만들어 내 명성을 얻고 돈만 많이 버는 영혼이 없는 천재만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계속)

김형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