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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서울선언’ 숨은 도우미는 메르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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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2일 서울 G20 정상회의 시작 직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가 후진타오 중국주석을 찾아가 말을 건네고 있다. 이들의 대화를 위해 회의 개막시간까지 늦춘 이명박 대통령이 두 정상에게 다가가고 있다. 우연히 찍힌 것 같지만,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장면이다. 이 대통령이 전략적으로 의장 역할을 하고, 메르켈 총리가 중재 역할을 잘한 덕분에 내년 상반기까지 가이드라인을 만들자는 합의가 나올 수 있었다. [서울 로이터=연합뉴스]

12일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둘째 날 행사가 열린 서울 코엑스 회의장. 오전 9시가 지났는데도 웬일인지 회의는 곧바로 시작되지 않았다. 정상들은 친소 관계에 따라 소그룹별로 대화를 이어갔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자리까지 찾아가 장시간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했다. 자리에 앉아 회의 자료를 검토하던 이명박 대통령은 이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드디어 이 대통령은 오전 9시50분쯤 정상회의 개막을 알리는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회의는 순조로웠다. 오전 11시 정상들은 막판 쟁점이었던 경상수지 가이드라인을 내년 상반기까지 만들기로 합의했다. 서울 G20 정상회의가 지난달 경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의 환율 합의를 뛰어넘는 순간이었다.

 여기엔 메르켈 총리의 중재가 큰 효력을 발휘했다. G20에서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미국은 수치를 정해 경상수지를 관리하자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경상수지의 수치 규제에는 독일·중국 등 무역흑자국이 강하게 반발했다. 의장국인 한국이 중재에 나섰다. 수치 규제를 합의문에 넣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명시적으로 포기하지도 않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미국이 한 발 양보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중국이 가이드라인의 도입 시점을 못 박는 데 반대했다. 12일 오전 3시까지 이어진 셰르파(정상 대리인) 회의에서 여러 나라가 중국을 설득했지만 최종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렇게 날이 밝았다.

 의장인 이 대통령은 첫 세션 개막시간을 늦추기로 결정했다. 공식 세션에서 정상 간의 이견이 노출되면 합의가 더 힘들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셰르파 라인을 가동해 다시 한번 각국의 협조를 부탁했다. 이 대통령은 전날에도 각국 정상들에게 “가이드라인 도입 시점을 정해야 G20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가 어떻게 중국을 설득할 수 있었을까. 독일은 미국이 주장한 수치 규제에 가장 강력하게 반발했던 나라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마음을 여는 데 안성맞춤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의장국인 한국이 독일과의 ‘핫라인’을 통해 모종의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이에 대해 G20 준비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외교 관례상)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2009년 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조세피난처 규제 문제를 놓고 정면 충돌한 프랑스와 중국 을 중재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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