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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들 시간은 가장 희소한 자원” G20 전후 동선으로 본 국제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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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늘 개막되는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위해 세계의 리더들이 속속 입국하고 있다. 서울 G20 정상회의는 매우 중요한 국제무대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한국에 오는 정상들은 어디를 거쳐왔으며, 또 어디로 향하는가. 사공일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은 “정상들의 시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희소한 자원”이라고 자주 말하곤 한다. 그들의 동선(動線)을 바탕으로 국제 경제의 판도를 읽어본다.

 ◆미국은 ‘중국 견제용’ 순방=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열흘간의 아시아 순방 중에 한국을 찾는다. 그의 대통령 임기 중 가장 긴 출장이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거쳐 10일 저녁 한국에 도착했다. 인도에서 사흘간이나 머물렀다. 새롭게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는 브릭스(BRICs)의 일원인 인도를 중요한 파트너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환율 문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견제용이라는 시각이 많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인도~인도네시아~한국~일본으로 이어진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을 ‘민주주의 색채가 짙은 일정’이라 표현했다. “자기 주장이 점점 강력해지는 중국을 감안할 때 이렇게 일정이 짜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란 해석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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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윤영관(정치외교·전 외교통상부 장관) 교수는 “미국은 과거처럼 일방주의적 리더십을 더 이상 행사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다른 나라와의 협력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또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을 중국을 설득하기 위한 지렛대(레버리지) 차원의 순방외교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아시아 순방은 다자간 협상 무대인 서울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지지를 모으는 효과도 있다. 연세대 김기정(정치학) 교수는 “G20 같은 다자 외교의 특성상 어떤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미리 국가 간의 소규모 다자 외교를 통해 사전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런 이유에서 다자 외교 무대가 열리기 전에 별도의 양자회담을 열어 합의의 틀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유럽 넘보는 ‘차이나 머니’=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며칠 전 프랑스와 포르투갈을 잇따라 방문했다. 두 나라를 방문한 후 주석은 넘쳐나는 ‘차이나 머니’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프랑스에선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부인 카를라 브루니 여사가 함께 공항에 나가 후 주석 부부를 영접했다. 2박3일의 프랑스 방문 기간에 후 주석은 사르코지 대통령과 다섯 차례나 만났다. 중국은 프랑스 에어버스의 항공기 102대와 원전회사 아레바의 우라늄 등 200억 달러(약 22조원) 규모의 화끈한 구매계약으로 화답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금 세계에선 중국 도움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말까지 했다.

 경제난을 겪고 있는 포르투갈을 방문했을 땐 “포르투갈이 국제 금융위기에서 벗어나는 걸 돕기 위해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포르투갈 국채 매입 규모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차이나 머니의 힘은 현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서울에 오기 직전인 9일 1박2일로 중국을 찾았다. 두 나라 간의 무역 확대가 중국 방문의 최대 목적이었다.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을 포함해 교육·통상·에너지 분야의 장관 4명과 기업인 50여 명이 함께 움직였다. 캐머런 총리는 10일 “양국이 무역과 투자 분야에서 기회를 잘 활용하고 에너지·환경·제약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G20에 눌린 APEC=2005년 부산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릴 때도 ‘단군 이래 최대 외교행사’라는 말이 나왔다. 바로 그 행사가 서울 G20 정상회의 직후인 13~14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일본·중국·캐나다·러시아·호주·인도네시아·멕시코는 G20 회원국이면서 APEC 회원국이다. 이들 정상은 서울회의가 끝나면 곧바로 일본으로 향한다.

 하지만 예년에 비해 APEC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미지근하다. G20 직후 열리는 탓이 크다. APEC이 2009년 기준으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54%, 무역의 약 44%, 인구의 40%를 점유하는 지구촌 최대의 지역협력체지만 세계 GDP의 85%를 차지하는 G20에 비해 규모가 작다. 유럽과 인도가 빠진 탓이다.

서경호·권호·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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