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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쪽에서 보는 외교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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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강찬호
정치부문 차장

“우리 외교관들, 힘들게 일하는 것 잘 알아. 그 어렵다는 외무고시에 합격한 엘리트들이 요즘 웬만한 한국인들 가기 꺼리는 오지(奧地)·험지(險地)에서 일하고 있지. 그러나 솔직히 요즘 세상은 고시 합격증과 외국어 실력만으로 통하는 데가 아니야.

 우리 외교관들은 그런 현실을 모르는 건지, 알고도 외면하는 건지, 좌우지간 목에 힘만 주고 앉아 있는 사람이 많아. 얼마 전 겨우 수습된 한국·리비아 외교 갈등만 해도 그래. 리비아가 우리에게 뭐가 불만인지, 또 어떻게 사태를 풀어가야 하는지는 현지에서 수십 년씩 일하며 인맥을 쌓아온 우리 기업인들이 제일 많이 알 거야. 트리폴리에 나가 있는 우리 대사가 이분들을 자주 만나 정보를 구했다면 일이 쉽게 풀렸을지 몰라. 한데 대사가 그런 노력을 했다는 얘기는 들을 수가 없었어. 일이 터진 지 근 넉 달 만에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원수를 우리 특사가 어렵사리 만나 사태를 일단락지을 수 있었던 것도 대사관이 아니라 우리 기업 현지 지사가 두 사람을 연결해 준 덕분이라고 해.

 또 다른 사례가 있어. 우리 특사가 아프리카의 한 자원부국 원수를 만나러 갔는데, 밤 8시에 만나자던 국가원수가 밤 10시, 자정으로 자꾸만 면담 시각을 미뤘다는 거야. 그러자 특사를 수행했던 대사는 ‘우리를 무시하는 처사이니 돌아가자’고 주장했다고 해. 하지만 특사는 ‘이런 중요한 사람은 기업에선 몇 시간이 아니라 며칠이라도 기다려서 만나는 법’이라 일축하고 자리를 지켰다지. 대가는 쏠쏠했어. 특사를 만난 국가원수가 자원 공동개발과 공관 설치에 동의했다고 하지.

 우리 외교관들, 늘 ‘갑’으로만 살아와 그런지 너무 뻣뻣해. 우리 기업인 출신처럼 ‘을’로 살아온 사람들의 애환을 몰라. 물론 우리 외교관들이 오랫동안 처신해 온 방식을 깨긴 쉽지 않겠지. 하지만 시대가 변했어. 기업인들 뛰는 것의 10분의 1만 따라온다면 분명히 달라질 수 있을 거야.”

 청와대 주변에서 외교통상부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기업인 출신이 많은 정권이다 보니, 외교부에 이런 불만을 품고 있다. 딸을 특채한 장관이 단칼에 경질되고, 부처 전반에 고강도 개혁명령이 떨어진 건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외교관들로선 억울할 수 있을 것이다. 주권국가 간 관계를 장기적·전략적 안목에서 관리하는 외교 영역에 단기적 이해를 중시하는 기업적 잣대를 들이대선 곤란하다는 항변도 당연하다. 하지만 ‘기업인 마인드’를 외치는 이 정권에 들어와서 우리 외교에 부족했던 덕목들이 상당 부분 개선된 것도 사실이다. 우리 외교가 추구해야 할 국익은 국가안보 등 손에 잡히지 않는 영역이 많지만 원전 수주나 자원 확보 등 실질적인 국익 축적도 중요한 과제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의 지적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더 중요한 건 이번 기회에 국민을 하늘같이 여기고 봉사하는 청지기적 자세를 되찾는 것이다. 외교관들이 국민을 ‘갑’으로, 자신을 ‘을’로 여기고 뛴다면 외교부에 대한 청와대와 국민들의 시선은 이내 따스하게 바뀔 것이다.

강찬호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