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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토크 17] 'Dior History를 새로 쓰는 His Stor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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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뷔통의 마크 제이콥스와 며칠 전 에르메스를 떠난 장 폴 고티에를 살펴봤으면 이 사람도 연구해 봐야 한다. 시대가 낳은 또 다른 걸출한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올의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다. 1960년 11월28일 생이니 이제 며칠 있으면 만 50세가 된다. 그럼에도 외모에서는 아직도 악동 냄새가 난다. 그는 본인 작품에 스스로 모델로 나서기도 한다. 그만큼 열정이 넘친다. 지난 8월에 연 '2011 S/S 멘스 콜렉션'은 환타지로 무대를 채웠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고, 모델을 잭 스패로우처럼 분장시켰다. 이 날도 갈리아노는 마지막에 언더웨어를 입고 캣워크에 나타났다.

그는 재능과 열정, 쇼맨십까지를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30대 중반까지는 시장의 흐름을 읽는 재주는 적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여러 번 실패를 거듭했다. 스페인의 항구도시 지브롤터에서 영국인 배관공인 아버지와 스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모계 피를 더 진하게 받은 탓인지 겉으로 보면 완전 스페인풍이다. 본명(후안 카를로스 안토니오 갈리아노)을 보면 그의 출신이 더욱 분명해 진다. 그가 6살 때 가족이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그도 영국인이 되었다.

그는 이스트런던스쿨에서 섬유프린트를 공부했다. 이어 세인트 마틴스(Saint Martins) 예술학교에서 패션을 전공했다. 아르바이트로 극장에서 의상을 담당하기도 했는데 이런 것들이 그가 나중에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됐다. 82년 세인트 마틴스 졸업작품 발표회가 성공을 거두면서 미국의 유명 가수 다이애나 로스를 고객으로 삼기도 했다. 여기에 고무돼 졸업 후 바로 회사를 세웠지만 시장의 평가는 냉랭했다.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에 파리지앵들은 지갑을 열지 않았다.

그는 덴마크 갑부 페더베르텔센의 도움을 받아 재기에 나섰다. 젊은 감각의 '갈리아노 걸'을 선보여 1987년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 상을 받기도 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세 차례나 실패를 겪었다. 좌절하고 있던 그에게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다. 미국 보그지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였다. 그녀는 그에게 미국 은행의 융자를 연결해 주는 동시에 컬렉션 무대를 공짜로 섭외해 주기도 했다.

80년대 말 갻그런지 룩갽을 거부하고 여성스러움의 부활을 강조한 작품들로 93년 컬렉션에서 성공을 거머쥐었다. 94년과 95년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 상을 연거푸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95년 말 마침내 기회는 왔다. 지방시를 거느리고 있는 LVMH그룹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에 의해 지방시의 수석 디자이너로 발탁된 것이다. 2년 뒤인 97년 10월 21일엔 꿈에도 그리던 크리스찬 디올 하우스에 입성했다.

크리스찬 디올은 1947년 첫 컬렉션으로 일약 세계 패션계에 화려하게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10년 뒤인 52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돌연사하는 비운을 맞았다. 그가 없는 디올 하우스는 시련이었다. 디올을 대신해 이브 생 로랑(Yves Sanit Laurent), 지안프랑코 페레(Gianfranco Ferre)를 투입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 결과 한동안 파리의 주류 패션계에서 과거의 영향력을 조금씩 잃어버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다 1997년 창립 50주년을 맞은 디올은 분위기 반전을 위해 패션계의 악동 존 갈리아노를 영입했다. 37세라는 새파란 나이와 영국인이라는 사실이 디올을 사랑하는 프랑스인들을 혼란스럽게도 만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학창시절부터 유명했던 그의 4차원적 감각이 과연 디올의 우아하고 귀족적인 분위기와 조화를 이룰지가 미지수였다. 디올에 와서도 그는 도발적인 작품으로 파리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다행히 긍정적인 평가가 더 많았다. 디올의 품격을 견지하면서도 강한 실험정신이 50년 된 디올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연착륙에 성공한 것이다. 13년간 디올 하우스를 이끌고 있는 것이 가장 분명한 증거다.

책에서나 볼 수 있던 갈리아노의 작품 몇 점이 최근 서울 나들이를 했다. 엄밀해 말해 디올의 오트 쿠튀르(최고급 맞춤복) 역사가 서울 시민들에게 공개된 것이다. 10월 말 서울 청담동 갤러리아 명품관 EAST 외부에 특별무대가 마련됐다. 1946년 디올 하우스 론칭 이후 47년 첫 작품부터 2008년 여름 컬렉션의 이집트풍 드레스까지 오트 쿠튀르 드레스 8벌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것이다. 디올의 살아 있는 역사인 '뉴 룩(New Look)'의 블랙 플레어 스커트와 실크 재킷을 직접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디올 측은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 5월 상하이에서 개최한 디올 헤리티지 전시의 성공에 따라 한국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특별히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11월2일부터 14일까지 일반에게도 공개되고 있다.

심상복 기자(포브스코리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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