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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토크 15] 루이뷔통,에르메스마저 삼키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명품업계에서 흥미진진한 싸움이 전개될 것 같다. 아니 이미 시작된 느낌이다. 업계 1위인 LVMH가 2위인 에르메스를 집어삼키느냐는 문제다. 1, 2위라고 하지만 둘은 규모나 성격이 크게 다르다. 그럼에도 M&A 얘기가 나오는 것은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의 거침없는 식성 때문이다.

이미 60개가 넘는 유명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LVMH 제국의 아르노 회장. 하지만 그는 한번도 포만감을 보인 적이 없다. 5년 전 어느 기자회견장에서다. 이제 유명 브랜드를 그만큼 인수했으면 만족할 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No를 네 번이나 반복했다. 그 뒤 5년이 지나도록 이렇다하게 식욕을 채우지 못한 그가 마침내 사냥감을 찾은 듯하다. 타겟은 에르메스다.

10월23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LVMH가 14억5000만 유로(약 2조3000억원)를 들여 에르메스 지분 14.2%를 확보했다고 보도했다.주식으로 전환가능한 다른 유가증권까지 합치면 LVMH의 주식은 모두 17.1%에 달한다고 한다. 상당한 지분이다.

그런데 주식 매입 가격이 지나치게 낮다는 점이 이상하다. LVMH가 매입한 가격은 10월22일 에르메스 종가(176.2유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80.5유로이기 때문이다. 과연 누가 이 가격에 팔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아직까진 안개속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갾에르메스는 대주주 일가가 지분의 70%를 갖고 있는데, 이들 중 누군가 팔았을 가능성이 높다갿고 분석했다. 2010년 5월 CEO인 장 루이 뒤마가 사망한 후 에르메스 내부에서는 일부 가족의 주식 매도설이 간간히 흘러나왔다.

에르메스 인수설에 대해 LVMH는 즉각 성명을 냈다. 갾에르메스에 대한 주식 공개 매수는 없을 것이며, 이사회에 경영권을 요구하지도 않을 것갿이라고 밝혔다. 에르메스의 전략과 경영 방식도 지지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말을 곧이 들으려 하지 않는다. 아르노 회장이 최근 2년간 에르메스에 상당히 공을 들여온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99년 구치 인수전에 공식적으로 뛰어들기 직전까지도 매입설을 강하게 부인한 전례가 있다. 그래서 그의 에르메스 인수전이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FT도 갾LVMH는 스스로를 전세계 명품업계 흐름을 선도하는 기업이라 부른다갿며 갾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브랜드로 칭송받는 에르메스의 지분을 포트폴리오에 넣는 일을 결코 싫어하지 않을 것갿이라고 전했다.

LVMH가 에르메스를 인수하려면 창업주 일가를 맨투맨으로 설득해야 한다. 문제는 그들 중 얼마가 아르노 회장의 설득에 넘어가느냐다. 일단 골수 에르메스 맨들은 아르노 회장의 경영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명품에 대중화 바람을 불러일으킨 아르노 회장과는 달리 에르메스는 제조와 판매에서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만일 에르메스 일가 중 누군가 주식을 아르노 회장 측에 판다면 지금의 에르메스 경영방식에 반대하는 이들일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트렌드를 타고 이때 회사를 빠르게 키워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양한 품목을 내고 있지만 에르메스의 간판은 역시 버킨백이다. 모두 명장의 수작업으로만 만들기 때문에 하루 생산량이 극히 제한돼 있다. 그래서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다. 주문하고 2~3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다. 하자가 생겨 수선할 때도 당초 만든 장인이 수선한다고 한다.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명품의 희소성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기업이다. 그러면서도 특정 장인의 이름은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단지 에르메스란 브랜드로만 말하기 때문이다. 역사도 1837년 설립된 에르메스가 루이뷔통보다 23년 오래됐다. 에르메스는 당초 말 안장을 만드는 회사였다. 브랜드 로고도 거기서 따왔다. 지금까지 창업주 일가 중심의 경영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LVMH는 인수한 브랜드의 독특한 문화와 개성을 그대로 인정한다고 하지만 마케팅 측면에서는 일관된 전략을 전 세계에 적용하고 있다. 제품과 디자인은 브랜드별로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하되 유통과 마케팅은 본사에서 관리해 시너지를 높이고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이런 정책에 힘입어 모함 루이뷔통을 비롯한 다양한 브랜드의 가치를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대중을 위한, 대중에 의한 명품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아르노 회장이 가까운 미래는 아니더라도 언젠가 에르메스를 수중에 넣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쉽지 않을 거라는 견해도 만만찮다. 현재 에르메스의 시가 총액은 210억 유로에 달한다. LVMH의 3배가 넘는다. 또 LVMH는 빚도 많다. 여러 브랜드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같이 안은 부채다. 현재 그룹의 순채무는 27억 유로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 만일 LVMH가 에르메스를 인수한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모에 헤네시 지분을 다른 회사에 팔아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류 회사인 모에 헤네시는 주류 전문인 영국의 디아지오(Diageo) 같은 곳에 넘겨야 할 것이라는 얘기다.

아르노 회장은 럭셔리 브랜드의 가치는 상당부분 역사와 전통에서 나오기 때문에 새 브랜드를 만드는 것보다 기존 브랜드를 인수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인수한 브랜드들이 오늘날 LVMH 제국을 구성하고 있다. 에르메스가 LVMH에 인수된다면 제국을 지키는 하나의 성으로 격하될지도 모른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은 아르노 회장에 대해 "미국식 경영스타일에 물든 냉혹한 사업가"라고 혹평한 바 있다. 이 명품, 저 브랜드를 마구 인수하는 스타일에 반감을 드러냈던 것이다. 명품의 자격을 가장 잘 갖추고 있다는 에르메스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심상복 기자(포브스코리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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