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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의 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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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얼마 전 도쿄 동북쪽 도치기 현의 닛코(日光)라는 곳으로 단풍구경을 갔다가 생긴 일이다. 주젠지코(中禪寺湖) 주변 관광을 마치고 고갯길을 내려오고 있는데, 갑자기 차에서 우직 하는 소리가 났다. 차에서 내려보니 큰 돌부리에 왼쪽 앞바퀴가 찢어지고 휠이 심하게 우그러져 있었다. 다행히 펑크가 나지는 않았기에 고개를 내려와 주유소에 부탁해 트렁크 안에 있던 스페어 타이어로 교체했다. 스페어 타이어는 원래 타이어보다 바퀴 폭이 작아 한눈에 봐도 불안했다. 도쿄 집까지 돌아가려면 170㎞를 더 달려야 하는 상황. 스페어 타이어로 저속 운전하겠다는 내게 주유소 직원은 “스페어 타이어로 고속도로를 타는 건 위험하다. 가까운 옐로햇(자동차 액세서리 부품 소매점)에 들러 새 타이어로 교체하는 게 좋겠다”고 강력히 권했다. 하지만 그가 가르쳐준 옐로햇에도, 거기서 멀지 않은 또 다른 가게에도 도요타 렉서스에 맞는 타이어는 없었다. 일본에서 가장 큰 메이커인 도요타자동차, 특수 타이어도 아닌 일반 사이즈의 타이어 재고가 없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동차 부품가게의 종업원은 가장 가까운 우쓰노미야(宇都宮) 렉서스 매장을 소개했지만 전화로 확인한 결과 그곳에도 내 차에 맞는 타이어는 없었다.

 이제 믿을 곳은 렉서스 오너즈 데스크뿐이었다. 렉서스 오너즈 데스크란 자동차에 관한 질문과 상담, 사고·고장 등 긴급상황시 대응은 물론 내비게이션 목적지 설정, 도로 교통상황과 주차장 등 각종 정보를 제공한다. 운전자가 요청하면 식당과 호텔·항공기 티켓·렌터카 예약까지 대행하는 토털케어 서비스다.

 렉서스로 미국 시장을 석권한 도요타가 2005년 일본 판매를 시작하면서 시작한 무료 서비스다. 1년 365일 언제나 자동차 안의 오너즈 데스크 버튼만 누르면 담당자가 “누구누구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응대하는 게 마치 소원을 이뤄주는 알라딘의 요술램프 같다. 신차 구입 때 연료통을 가득 채워 배달한 것이며, 6개월에 한 번씩 무상 차량 점검을 해주는 AS는 렉서스에 대한 신뢰감을 키워줬다.

 하지만 이날 오너즈 데스크에선 “현재 인근 렉서스 센터와 각종 카센터 매장에 타이어 재고가 없다. 시속 90㎞까지는 안전하니 스페어 타이어로 조심해 돌아오길 바란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도치기현에서 도쿄로 오는 길목에 있던 렉서스 센터만 어림잡아 9곳이다. 순정품도 아니고 맞는 사이즈의 타이어 하나 구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지만 계속해 “대단히 죄송합니다”라는 답변뿐이었다.

 1년 전 미국과 전 세계 시장에서 불거진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 사태가 떠올랐다. 도요타자동차 창업주의 손자인 도요타 아키오(豊田章男) 사장을 미국 의회 청문회장에까지 세운 리콜 사태는 단순한 가속기나 제동장치의 결함 문제가 아닌 품질관리에 관한 도요타의 성의가 문제였다는 지적이다. 정말로 모든 매장에 재고 타이어가 없었는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제 아무리 튼튼한 엔진에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무엇하랴. 바퀴 없이는 자동차가 굴러가지 않는 것을.

박소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