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제조공장' 100여개 사설 정보지 넘쳐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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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A사는 언론에 이례적인 보도자료를 뿌렸다. '시중 정보지에 나돌고 있는 계열사의 매각설은 사실이 아니다.' 그제야 한 달 넘게 풍문으로 전해지던 A사의 계열업체 매각설은 꼬리를 감췄다. 일명 '찌라시'라고 불리는 사설 정보지에는 올 초부터 'A사가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계열사를 다른 대기업에 팔아넘길 것'이라는 내용이 실렸었다.

정부가 이같이 허위 사실을 퍼뜨리고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설 정보지에 대해 4월부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김승규 법무부 장관과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허준영 경찰청장은 15일 공동 담화문을 발표, "사설 정보지를 통해 근거없는 허위정보가 무분별하게 생산.유통되는 것을 막겠다"고 밝혔다.

?"악성루머 불특정 다수에게 유포"=찌라시에 실린 정보들은 해당 기업에 치명타를 주고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

외환위기 때에는 특정기업의 부도나 자금악화설이 마구 퍼져 건실한 기업들이 시달리는 경우도 허다했고 증시작전세력이 정보지를 주가조작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잘 나가는 모 벤처기업 사장은 자기 사무실 맨 꼭대기층에 혼자만 사용하는 밀실을 두고 회사 여직원과 수시로 밀회를 나눈다' 등 악성 루머가 정보지에 올라 해당 기업과 당사자를 곤혹스럽게 했다.

한 홍보대행사에 의해 작성돼 인터넷을 통해 일반인에게 알려진 '연예인 X-파일'에는 확인되지 않은 사생활 정보가 가득 실렸다. 해당 연예인들이 "인격적으로 살인당했다"며 정보 제공자들을 상대로 소송 중이다.

찌라시가 책자로 만들어져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검찰이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기업인을 소환하고 기업 빅딜이 추진되던 시기였다. 이후 여의도 증권가를 중심으로 '길거리 정보'를 전문으로 수집하는 '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 검찰이 파악하고 있는 찌라시 정보팀만도 15개가 넘는다. 이들은 주로 국정원.정부 기관의 정보담당, 금융권 직원, 국회의원 보좌관 등의 출신이다. 5~10명이 한 팀이 돼 활동하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모여 1차 자료를 만든다. 여기에 각종 분석과 전망이 첨가된 찌라시는 대부분 회원제로 운영되고 월 50만원 정도에 거래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터넷 메신저와 e-메일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퍼지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확대 재생산된 찌라시는 100가지가 넘는다"고 말했다.

?형사처벌 방침=검찰은 근거없는 개인 비방이나 기업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허위사실에 대해 구속수사할 방침이다. 현재까지 사설 정보지를 통한 명예훼손 등으로 형사처벌받은 사례는 없다. 검찰은 "고소.고발이 없더라도 피해자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물어 수사하겠다"고 강조했다. 업무방해죄.증권거래법상 허위사실유포죄 등을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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