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씨 회고록 '대화'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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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나의 시대적 역할은 끝났어요. 남은 역할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어주는 것 뿐이요"

'야만의 시대'에 지식인으로 힘겹게 살아온 리영희(76.전 한양대 교수.사진)가 최근 나온 회고록 '대화'(한길사) 의 말미에 한 이야기다.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등으로 70, 80년대 대학생들에게 '정신적 스승' 역할을 했던 그도 세월은 어쩔 수 없나 보다. 2000년 뇌출혈로 쓰러졌던 그를 경기도 군포시 자택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100% 악으로 치는 것도, 경제개발의 주역으로 신처럼 모시는 것도 못마땅하다"면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절대'요. 세상에는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없거든."이라고도 했다. 누구보다 핍박을 받은 그로서는 의외의 발언이다.

"(투쟁)대상이 바뀌었으면 이상을 추구하는 방식과 철학도 달라져야 합니다. 과격하거나 조급하게 이루려던 지난날의 운동 방침에서 벗어나 지혜로워졌으면 해요"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면서도 386세대를 포함한 지식인 사회를 향한 그의 충고는 이어졌다. "의의있는 사회적 변화는 단시일에 이뤄지는 게 아닌 만큼 시간적 여유와 너그러움이 있어야 해요"군사독재와 맹목적 반공에 온몸으로 저항했던 그의 당부이기에 더욱 진솔하게 다가왔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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