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식량 자급률 갈수록 하향 … 배추파동은 시작일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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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식품학자인 이철호 고려대 명예교수의 취미생활은 광릉수목원 주변의 텃밭(330여 ㎡)을 가꾸는 일이다. 벌써 10년째다. 올해 그는 처음으로 배추 농사를 망쳤다. “가을마다 밭고랑에 배추가 꽉 차 있었는데 올해는 속없는 작은 배추 잎들만 듬성듬성 보였다”며 안타까워했다. 배추 씨앗을 뿌려야 하는 시기(8월)에 비가 계속 내렸고, 습한 날씨 탓에 벌레가 들끓어 배추 싹을 모두 잘라 먹었다는 것이다. 그는 “파종 시기를 놓치면 배추를 수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다”며 “여름 비가 몇 번 더 내렸다고 배추가 거의 전멸했는데 우리 앞엔 지구온난화 등 더 큰 기후변화가 예고돼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식량안보재단 이사장이기도 한 이 교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의 식량안보(부족) 상황을 우려한다. “쌀이 남아돌아 북한에 보내야 한다”는 등 쌀로 인한 착시 현상이 사태의 심각성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기자는 한국과 일본의 식량 자급률을 비교한 국정감사 자료를 본 뒤 이 교수의 고성(孤聲)을 흘려 들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식량 부족에 관한 한 한국과 일본은 동병상련 처지다. 두 나라 모두 인구는 많고 농·수산업 등 1차 산업 비중이 낮아서다. 200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칼로리 자급률(하루 총 섭취 열량 가운데 국산 식품을 통해 얻는 열량의 비율)은 48.7%로 일본(41%)보다는 사정이 낫다. 2015년 칼로리 자급률 목표치는 한국(47%)·일본(45%)이 엇비슷해진다. 문제는 한국은 하향, 일본은 상향 곡선을 그린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부족한 식량은 외국에서 싸게 수입해 먹지”라는 느슨함이 위기의 본질이다.

 이 같은 생각이 안이·위험하다고 보는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호주의 가뭄 등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 이변, 사막화·도시화, 미국의 바이오 연료정책(곡물을 이용한 바이오연료 생산) 등 세계적인 식량 부족을 몰고 올 일들이 현재진행형이다. 둘째, 우리 식탁에 값싼 식재료를 공급해온 중국이 식량 수입국으로 전환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일부 곡물 수출을 제한하고 있으며, 세계 식량의 ‘블랙홀’이 될 조짐마저 보인다. 러시아도 올해 밀 수출을 동결했다.

 셋째, 외국에서 식량을 값싸게 사올 수 있는 시대는 저물었다. 이미 2007∼2008년 국제 곡물가격 급등을 경험했다. 국제 곡물시장은 ‘엷은 시장’(thin market)이어서 공급량이 조금만 줄어도 가격이 크게 오를 수 있다.

 유비무환이라 했다. 식량 위기라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국민·정부·기업이 힘과 지혜를 모을 때다. 국민은 식량을 아끼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등 생활 속에서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곡물 자급률이 세계 최저 수준인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하루 음식물 쓰레기 발생량은 470g으로 세계 최고다. 일본(300g)·미국(160g)을 크게 앞선다.

 정부엔 쉬는 농지를 활용하거나 이모작 등을 통해 곡물자급률의 ‘마지노선’이 무너지지 않도록 철통 방어에 나설 것을 당부한다. 곡물 등 식재료의 주요 사용처인 식품·농업기업은 해외농업(농지) 개발에 적극 나서되 철저한 사전 준비를 통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박태균 기자 tk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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