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매일 아침 ‘대통령 + 5인 회의’가 국정의 방향타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3기 청와대’를 이끌어 가고 있는 핵심 참모들. 왼쪽부터 임태희 대통령실장·백용호 정책실장·정진석 정무수석·홍상표 홍보수석·김두우 기획관리실장. [중앙포토]

#새벽 6시. 아직 어두컴컴한 이때부터 청와대의 시계는 돌아간다. 수석과 비서관·행정관에서 주방 아주머니에 이르기까지 이 시간이면 모두 출근해 있다. 스태프들은 밤새 국내외에서 벌어진 상황을 체크하고 대통령에게 보고할 내용을 정리한다.

#오전 7시. 비서동엔 수석실별로 회의가 열린다. 임태희 대통령실장 밑으로 정무(수석 정진석)·민정(권재진)·사회통합(박인주)·외교안보(천영우)·홍보(홍상표) 등 5개 수석실이, 백용호 정책실장 산하에 경제(최중경)·교육문화(진동섭)·고용복지(진영곤) 3개 수석실과 미래전략기획관실(유명희)이 있다.

#오전 7시30분. 임태희 대통령실장 방에서 5인 미팅이 열린다. 임 실장과 실장 직속인 김두우 기획관리실장, 정진석 정무수석·홍상표 홍보수석·김희정 대변인이 고정 멤버다. 시급히 처리해야 할 현안을 논의하고 대응 방안에 대한 조율이 이뤄진다.

#오전 8시. 위민관(청와대 비서들이 근무하는 비서동. 비서실장·정무수석·홍보수석·기획관리실장방은 위민 1관에 있다)에서 자동차로 2~3분 거리에 있는 본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5인이 마주한다. 사전 조율에서 걸러진 몇 가지 사안에 대한 보고와 토론이 이뤄진다. 대개의 경우 정책방향이나 대응 방안들이 여기서 최종 결정된다.

청와대의 아침은 긴박하다. 이 2~3시간 동안 그날 국정의 방향타가 결정된다. 혼선을 빚고 있는 정책에 대한 궤도 수정이 이뤄지기도 하고 술렁대는 민심을 잠재우기 위한 대통령의 결단도 대부분 이때 이뤄진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의 시진핑(習近平·중국 국가 부주석) 발언 논란이 그런 경우다. 당시 5인회의에선 박 원내대표가 시 부주석이 말했다며 전한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 평화 훼방꾼’ 발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중국에 유감 표시를 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중국에 결례가 될 수 있는 외교적 사안이라고 판단해서다. 정진석 정무수석은 “임 실장 주재 회의에서, 시 부주석 발언이 사실인지 대화록을 점검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외교안보수석과 함께 대화록을 읽어봤는데 전혀 그런 내용이 없더라. 그래서 문제를 제기해 정면으로 대응하기로 방향을 잡은 것”이라고 전했다.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사퇴, 행정고시 폐지 방침 백지화 같은 결정이 나오기까지 5인회의가 조타수 역할을 했다. 이들을 이끌어가는 이가 임태희 실장이다. 류우익(2008년 2~6월)→정정길(2008년 6월~2010년 7월)에 이어 청와대 3기를 이끌고 있는 대통령실의 수장이다. 이제 막 취임 100일(10월 23일)이 지난 ‘3기 청와대’는 그 전과 어떻게 다를까. 여야 의원들은 대체로 “임태희 실장 체제가 들어선 뒤 세상에 큰소리가 줄어들었다. 청와대 내부에선 참모들 사이의 갈등 수위가 낮아졌다. 정책혼선도 상대적으로 잘 조정되고 있다”는 평가에 동의하는 편이다. 한나라당 친박계의 한 초선 의원은 “별 잡음 없이 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고, 민주당의 재선 의원도 “어쨌든 임기 후반부에 대통령 지지도가 50%를 유지하고 있는 건 평가할 만한 것 아니냐”고 했다. 이런 평가는 전임 대통령실장들이 교수 출신인 데다 수석들의 각개약진 방식이었던 데 반해 임태희 실장은 3선 정치인+장관 출신으로 시스템 운영을 중요시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독대 줄어 ‘왕수석’ ‘실세’ 용어 사라져
임태희 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비서실’이다. 요즘 청와대에선 ‘왕수석’이니 ‘실세’니 하는 말들이 사라졌다. 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해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수석들 간 물밑 경쟁도 사그라지고 있다. 대신 ‘팀 플레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한 게 “부드러우면서도 자율을 중시하는 임 실장의 리더십”이라고 청와대 직원들은 입을 모은다. 현 정부 출범 초부터 청와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비서관의 전언.

“처음 청와대에 오면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의욕과 착각에 빠져 무리하게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그런데 임 실장은 청와대와 정부 부처의 역할, 수석과 비서관의 역할과 권한에 대해 명확한 구획정리를 해준다. 기본적으로 일은 부처와 장관이 책임지고 하고, 청와대는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거나 대통령의 관심사를 점검하는 것으로 역할을 규정했다. 그러니 불협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임 실장이 경제관료(기획재정부, 청와대 파견 비서관) 출신인 데다 정당(3선 의원)과 정부(직전 노동부 장관)에서 두루 일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른바 당·정·청(黨政靑) 각각의 사정을 잘 아는 것 같다. 임 실장은 또 비서관은 대통령의 비서관이지 수석의 비서관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해 수석과 비서관의 역할 구분을 명확하게 해준다.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스템이 잘 작동하면 시간이 절약되고 효율은 높아진다. 불필요한 낭비가 줄어들면 피로도도 그만큼 낮아진다.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청와대 직원들 사이에 ‘대수비’라 불리는 회의다. 대수비란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 회의의 약칭이다. 수석들(기획관 포함)은 매주 월요일 대수비에, 수요일과 일요일엔 ‘실수비’(비서실장 주재 회의)에 참석한다.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우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업무 보고를 수석실별로 3건을 넘지 않도록 했다. 분량도 A4용지 1장으로 제한했다. 전체 보고 건수가 30건을 넘지 않는다. 그 전엔 70~80개의 의제가 올라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보고시간이 짧아지고 대신 토론을 통한 ‘선택과 집중’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늘 오늘 회의에서 결론을 짓겠다는 자세로 토론이 벌어진다. 토론을 위한 토론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의제 건수가 줄었다고 내용이 부실해 진 건 아닌 듯하다. 오히려 단단해졌다는 평이다. 이 대목에선 김두우 기획관리실장의 역할이 돋보인다. 7월 인사 때 메시지기획관에서 스스로 한 계급 ‘강등’된 기획관리실장을 자처한 김 실장은 매일 아침 팩스로 A4용지 2장 분량으로 일일 요약보고를 이 대통령에게 보낸다. 각 수석실로부터 받은 현안 보고내용을 다시 한번 걸러 감각적이고 정교한 요약본을 만드는 것이다. 사안에 따라선 구체적인 대응 전략까지 담고 있어서 대통령이 회의 참석 전 그날의 중요 사안을 미리 체크하고 대강의 구상을 할 수 있게 짜여 있다. 한 고위 관계자는 “대수비가 비즈니스 스타일로 굴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주입·지시형 회의가 아니라 핵심 의제를 놓고 활발하게 토론하는 기업의 간부 회의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김두우 실장도 “집권 2년 반을 지나면서 VIP(대통령)가 국정 전반을 훤히 파악하고 있고 정치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따라서 디테일하게 보고하기보다 참모들과 토론을 많이 하는 쪽으로 회의가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600m이상, 25도이하서 자라는 고랭지 배추”
참석자들의 전언을 토대로 이달 초 있었던 ‘대수비’의 한 장면을 재현해본다. 당시는 배추값 폭등 논란이 한창일 때였다. 4대 강 사업 때문에 배추 파종면적이 줄어 배추값이 폭등했다는 반대진영의 주장이 도마 위에 올랐다.

▶담당 수석=“4대 강변의 채소 재배 면적은 전체의 1.3%밖에 안 된다. 이런 점을 강조해 배추값 폭등과 4대 강은 관련이 없다는 홍보를 하겠다.”

▶이 대통령=“지금 문제가 되는 배추는 6월에 파종해 추석 전후에 수확하는 고랭지 종이다. 원래 5년, 10년 전만 해도 이 계절에 배추김치를 먹지 못했다. 고랭지 농법이 도입되기 전엔 열무김치를 주로 먹었다. 고랭지 종은 해발 600m 이상, 섭씨 25도 이하에서 자라는 종자다. 그러니 4대 강 주변 밭에서 나는 배추와 지금 문제가 되는 배추가 종자부터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런 점을 부각해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방안을 연구해보라.”

순간 감탄사와 웃음이 터져나왔다. 수석들 누구도 완전히 다른 고랭지 종자라는 걸 착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할 때 배추값이 폭락한 적이 있어서 직접 가락동시장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고랭지종에 대해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부동산 대책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가 이슈가 됐던 8월 말엔 이런 일도 있었다. 국토해양부를 중심으로 DTI 규제 완화가 추진되고 있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도 이참에 폐지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정치적 파장을 우려한 참모들이 “지금 그 얘기까지 꺼내면 일파만파로 커진다”고 건의했고 이 대통령은 “그럴 수 있겠다”며 참모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3기 청와대’ 참모진이 팀워크 플레이로 굴러가는 데는 ‘동년배’들로 진용이 짜여진 것과도 맞물려 있다. 실장과 주요 수석들이 모두 50대다. 우선 투 톱인 임 실장과 백용호 정책실장은 동갑(54세)이다. 두 사람은 각각 당선자 비서실장과 인수위원으로, 또 한나라당 정책위의장과 공정거래위원장으로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직전엔 노동부 장관과 국세청장으로 내각에서 같이 일했다. 백 실장은 “청와대에 들어와서 한번도 낯을 붉힌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높은 신뢰를 받고 있는 점도 닮은꼴이다. 특히 백 실장은 이 대통령이 야인 생활을 하던 1996년부터 함께 해온 사이다. 한나라당 중진의원은 “백 실장은 말이 없는데도 대통령의 신뢰가 아주 높다. 대통령의 뜻을 잘 알고 정책조율을 할 줄 안다”고 평했다.

이동우 정책기획관은 “백 실장은 경청하면서 원칙을 지키는 스타일”이라며 “공정한 사회란 큰 어젠다를 임태희 실장이 견인해냈다면 백 실장은 이를 정책적으로 구체화할 때 재정 투입형이 되지 않으면서 친서민의 디테일이 살아나게 일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정무라인 멤버인 정진석(50·한국일보) 정무·홍상표(53·YTN) 홍보 수석, 김두우(53·중앙일보) 실장은 기자 출신이다. 나이는 정 수석이 3살 아래지만 기자 초년병 시절 함께 경찰기자를 했고 이후 정치부 기자로도 현장을 같이 누볐다. 정치적 감각과 정무적 판단이 뛰어나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 수석은 3선 의원 출신답게 스케일이 크고 대담하다. 취임 직후 박근혜 전 대표와 이 대통령과의 만남을 이끌어 내 최고조에 달했던 친이-친박 갈등을 누그러뜨리고 당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특히 두 사람의 회동 발표문에서 “박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선 경선과정이 공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란 대목은 정 수석의 정치감각이 잘 발휘된 것으로 평가됐다.

월요일에 ‘대수비’ 수·일요일엔 ‘실수비’
‘문고리 권력’이란 말이 있다. 대통령과의 독대 횟수가 권력의 크기와 비례함을 빗댄 말이다. 역대 정권에서도 대통령의 일정을 짜는 건 청와대 내에서도 기밀에 속했다. 과거엔 수석들이 수시로 대통령과 독대를 하거나 보고를 하면서 대통령 일정을 1부속실과 협의해 잡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도 시스템에 의해 정해진다. 정치 분야는 임 실장, 정책관련은 백 실장을 거쳐 일정을 짜는 게 룰이 됐다. 특히 다음 달의 G20 정상회의를 앞둔 요즘은 가급적 공개적인 외부 일정은 잡지 않고 G20준비에 올인하도록 스케줄을 간소화시켰다.

대통령의 부담이 줄어들고 여유를 찾게 되면서 다양한 시도들이 나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매달 한 번씩 하는 대통령 주재 확대비서관회의에 행정관들이 참석하도록 한 것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자유스럽게 토론해보자는 취지다. 또 이 대통령은 가끔 연풍문(청와대 면회실) 나들이도 한다. 시민들과 만나거나 행정관들과 ‘번개 미팅’을 즐긴다.

이런 변화들이 임기 후반부의 대통령 지지율을 50%로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란 게 청와대 측 주장이다. 한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3년차여서 역사적 안목과 경험이 성숙해졌고 촛불정국에 이어 글로벌 경제 위기까지 내적·외적 위기를 모두 다 돌파했기 때문에 경륜이 더 쌓인 것 같다”며 “임기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새롭게 기획하기보다 있는 과제를 마무리하는 쪽으로 가면서 자연스레 선택과 집중이 이뤄져 선순환 구조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려의 시각도 있다. 한나라당의 친박계 의원은 “남북문제, 선거구제 개편 같은 이슈를 어떻게 핸들링할지가 관건”이라며 “연말이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재선 의원도 “물가, 일자리 문제가 해결 불능 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지지율 50%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정민·박신홍 기자 jmlee@joongang.co.kr

중앙SUNDAY 무료체험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