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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세상은 넓고 기회는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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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는 키메프(KIMEP)라는 엘리트 대학이 있다. 키메프는 카자흐스탄 경영.경제.전략연구소(대학)를 줄여 부르는 이름이다. 모든 과정의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하는 것이 키메프의 강점이다. 학생 3100명에 교수 170명. 교수의 98%가 외국대학 학위 소지자들이고 그중 53명이 외국인이다. 학비가 비싼 대신 학생의 60%가 장학금을 받는다. 카자흐스탄과 이웃 나라에서 우수한 고졸들이 몰려든다. 취업률은 거의 100%다.

키메프의 재단이사장 겸 총장은 한국인 경제학자 방찬영 박사다. 샌프란시스코대 경제학 교수였던 그는 소연방 붕괴로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1991년부터 93년까지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의장인 경제전문가위원회 부의장으로 사회주의경제를 시장경제로 바꾸는 대역사(大役事)를 주도했다. 94년 한양대 교수로 귀국했다가 이듬해 삼풍백화점 붕괴로 부인.아들.딸을 모두 잃는 참혹한 일을 당하고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갔다.

그는 대통령의 교육정책 고문으로 일하다 98년 공산당 간부학교를 인수해 유럽공동체(EU)와 소로스 재단, 그리고 미국 대외원조처(USAID)의 지원으로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엘리트 대학으로 키워냈다. 지금은 해외 지원은 끊기고 독립채산제로 대학을 운영한다. 인구 1500만 명의 카자흐스탄에서 키메프는 2003년부터 600명의 우수한 인재를 배출한다. 그들이 이 나라의 지도층을 이루는 것은 시간 문제다.

방 총장은 기업경영에서도 실력을 발휘해 가구생산.건설업과 보세창고업으로 성공했다. 그가 알마티에 지은 고급 주택은 한국.미국.영국.터키의 대사관저가 됐다. 보세창고는 카자흐스탄 최고라고 한다. 그는 사업으로 번 돈을 키메프에 부어 넣고 있다. 한 가지 옥에 티는 그가 한국의 경동보일러와 합작 보일러 회사를 세웠다가 지금 경영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방 총장의 성공은 중앙아시아의 혼란기에 안락한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미지의 세계에 뛰어든 용기와 모험의 산물이다. 94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던 그가 삼풍사건을 당하지 않고 한국이나 미국에 안주했다면 오늘의 방찬영은 없고 중앙아시아는 미국과 유럽 수준의 엘리트대학 하나를 가질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방 총장 같은 사람을 보면서 우리의 출세관과 가치관을 돌아보게 된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대기업 경영자, 판.검사, 의사가 되겠다고 바둥거린다. 많은 젊은이가 미래에 대한 꿈도 없이 표류하는 것 같다. 장관도 되고 정치인도 돼야겠지만 많은 한국인이 웅덩이같이 좁아터진 한국을 떠나 유라시아 같은 지역의 광대한 무대에서 꿈을 펼쳐야 하지 않는가.

키르기스스탄에서도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원과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원장을 지낸 경제학자 이풍 박사가 자동차 정비공장을 운영하면서 대학 강의와 비정부기구(NGO) 활동으로 새로운 삶을 성공적으로 개척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김인태 박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실크로드 도시로 유명한 사마르칸트의 외국어대 한국어학과 과장으로 한국에 관심 있는 그 나라 학생들에게 한국과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사마르칸트를 찾는 한국인들에게 티무르 제국의 유적지를 안내하는 생활에서 큰 만족을 얻는다.

중앙아시아에서 건강한 활동을 하는 젊은이도 많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봉사단원으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어와 컴퓨터를 가르치고 원예와 환경문제를 지도하고 한국-카자흐스탄 친선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젊은이들과 NGO 봉사단원은 100명이 넘는다.

중앙아시아는 지금 정치.사회.경제체제가 바뀌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방찬영.이풍.김인태 박사의 경우가 실증하듯 중앙아시아나 코카서스 같이 체제가 바뀌는 나라는 용기와 꿈을 가진 한국인들에게 넓은 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비행기로 7시간 이내의 거리에 있고 40만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어 한국에 호감을 가진 중앙아시아와 그 옆의 코카서스는 우리에게 기회가 넘치는 넓은 세상이다.

<알마티에서>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