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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영화] 인게이지먼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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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면

감독 : 장 피에르 주네

주연 : 오드리 토투.가스파 울리엘 장르 : 드라마

등급 : 15세

홈페이지 : www.engagement.co.kr

20자평 : 당신을 밝혀주는 등대가 있나요. 그렇다면 행복한 사람.

프랑스 영화 '인게이지먼트'는 묘하다. 멜로.전쟁.액션.추리 등 특정 장르로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것저것 마구 섞인 종합선물세트라고 부르기에도 난감하다. 그러면 실험영화? 천부당 만부당하다. 때깔 화려하고, 효과음 빵빵한, 분명 상업영화다. 상영시간도 두 시간이 훌쩍 넘는다(134분). 잘못 만들면 지루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감독은 곳곳에 트릭을 숨겨놓았다. 정신 차리고 보지 않으면 내용이 헷갈릴 정도. 그런데도 결말은 간단하다. 요즘 드라마.영화에서 애용하는 기억상실증까지 곁들였으니 대중적 재미도 충분한 편이다.

그 중심에는 오드리 토투가 있다. 4년 전 개봉했던 '아멜리에'의 그를 기억하시는지. 타인의 사랑과 행복을 위해 애면글면 뛰어다니고, 틈틈이 공상에 빠졌던 낭만파 소녀 아멜리에. 오죽하면 토투가 나왔다는 사실 하나로 전혀 관계없는 영화에 '아멜리에 2'라는 이름을 붙이고 버젓이 개봉까지 했을까.

'인게이지먼트'의 토투도 꿈을 확신하고, 사랑을 숭배하는 소녀다. 하지만 '아멜리에'와 캐릭터가 전혀 다르다. '아멜리에'의 토투가 남을 먼저 배려했다면 '인게이지먼트'의 토투는 눈앞의 사랑에 몸을 던진다. 또 파리의 일상이 '아멜리에'의 무대라면 '인게이지먼트'는 삶과 죽음이 일순간 엇갈리는 핏빛 전쟁터다.

'인게이지먼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의 참호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오랜 전투에 지친 병사들. 코앞에는 독일군이 버티고 있다. 이곳에 후송되는 프랑스군 사형수 다섯 명. 각기 자해하거나 군기를 어겨 사형을 선고받은 '얼치기 군인'들이다. 이 중 한 명이 소아마비 소녀 마틸드(오드리 토투)의 약혼자인 청년 마네크(가스파 올리엘).

바닷가 한적한 마을에서 약혼자를 기다리던 마틸드는 마네크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는다. 프랑스군과 독일군 사이 '비무장지대'에서 마네크가 공습을 받고 사망했다는 것. 마틸드는 그 죽음을 믿을 수 없다.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병사를 찾아다니고, 탐정도 고용하며 약혼자의 행방을 추적한다.

영화에선 크게 두 부분이 교차한다. 터지는 포탄에 온몸이 조각나는 전장의 살벌한 풍경과 약혼자를 수소문하는 마틸드의 순정이 교대로 등장하며 전쟁과 사랑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참혹한 전쟁 장면은 순간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연상시킨다. 제작비만도 4000만 유로(약 530억원)가 들어간 로망 어드벤처다. 그 전쟁과 사랑 사이로 미스터리가 끼여든다. 사형수 다섯 명의 운명을 둘러싼 치밀한 추리극이 펼쳐지는 것. 그들의 복잡한 관계에 두 연인의 사랑을 풀어가는 실마리가 숨겨 있다. 어린 시절 말 없는 소녀 마틸드와 등대지기 소년 마네크의 분홍빛 인연도 스크린을 찢는 포성을 잠재운다.

웃음과 슬픔이 중첩되고, 현실과 환상이 겹쳐지는 '인게이지먼트'. 반전의 외침도 없고, 뜨거운 정사도 없다. 남는 건 토투의 화사한 미소뿐. 기묘한 전쟁영화요, 재미난 멜로영화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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