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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아웅산 수치 여사와 미얀마 민주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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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1989년 이래 세 번째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치 여사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유엔이 수여하는 '뛰어난 불교 여성상'을 받았다. 그러나 미얀마 군사정부는 유엔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등 국제사회의 거듭된 압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가택 연금을 해제하지 않고 있어 수치 여사는 3월 7일 방콕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올해 만 60세가 되는 그는 미얀마 독립영웅이었던 아웅산 장군의 딸로 국제사회로부터 불의와 고통에 맞서 평화적으로 민주화 투쟁을 해 온 동남아의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수치 여사는 네윈의 1인 장기 독재체제가 오늘날의 군사정부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국민민주동맹(NLD)을 결성해 90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군사정부는 사회 혼란에 따른 국론 분열을 이유로 이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치 여사를 89년부터 95년까지 6년간 가택에 연금했다. 미얀마 군사정부는 인권과 민주화를 부르짖는 끈질긴 국제적 압력과 국민경제의 회생이라는 대내외 압력에 굴복해 95년 수치 여사의 연금조치를 해제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평화적인 민주화 투쟁에 고무된 미얀마 사회가 반정부 움직임을 보이자 2000년 7월 다시 가택연금을 단행했다. 2년여 만에 연금이 해제됐던 그는 2003년 5월 세 번째 연금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냉전 구도가 붕괴한 뒤 이데올로기 경쟁체제에서 경제경쟁체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가 민주화로 열병을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동남아는 민주화의 높은 파고로부터 가장 변방에 남아 있었다. 동남아가 내세운 '아시아적 가치'덕분이었다. 개개인의 인권과 전방위적인 민주화를 내세운 서양과 달리 개인보다 사회와 국가를 우선해 사회와 경제를 안정시킨 뒤 정치 발전(민주화)을 이루는 단계적인 순서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동남아에서 국가와 민족의 발전은 정치 발전을 이룬 검증된 지도자의 강력한 영도력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통치조직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일시적으로 유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계급사회를 수용하는 전통적인 동양의 가치관과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흐리게 하는 내세관, 그리고 억압적인 정부에 순종해 온 오랜 식민통치의 영향 등이 동남아의 민주화를 더디게 해 왔다.

이런 경향은 동남아의 최강 국가이자 70년대 후반 이후 20여 년 동안 정치적 안정을 구가하면서 연평균 9%의 경제발전을 이룬 인도네시아가 수하르토 정권 붕괴 후 국민경제가 파탄에 이르고 걷잡을 수 없는 정치적 혼란에 휩싸이면서 분명하게 목격됐다.

이는 동남아가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민주화를 동시에 추구할 경우 둘 중 하나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인식하게 된 배경이다. 이에따라 국제적인 사조를 좇아 시장경제 논리에 입각한 경제적 민주화를 추구하면서도 정치적 민주화는 유보하거나 암묵적으로 거부해 왔다. 대표적 예가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등 인도차이나 3국과 미얀마다.

하지만 아태경제협력체(APEC)나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의 주역은 분명히 아세안이다. 경제와 사회개발이 정치적 민주화를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한 서방세계는 동남아의 아시아적 가치를 어느 정도 수용해 메콩강 개발계획을 적극 지원하는 등 동남아 민주화를 우회적으로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인도차이나 3국이 이미 이에 화답하고 나섰다. 마지막으로 미얀마 군사정부가 답할 차례가 되었다. 수치 여사 석방은 미얀마 민주화 진전의 상징이 될 것이다.

양승윤 한국외대 교수.국제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