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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레바논 주둔군 단계적 철수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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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 5일 레바논 베이루트 도심의 한 광장에서 시리아군 철군을 지지하는 레바논 시민들이 대형 화면을 통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철군발표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베이루트 AP=연합]

레바논에서 주둔 중인 시리아군 1만4000여 명이 곧 철수할 것이라고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5일 발표했다. 이어 압둘 라힘 무라드 레바논 국방장관도 6일 시리아 군대가 7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열리는 양국 지도부 회의 직후 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4일 라피크 알하리리 레바논 전 총리 피살 뒤 거세진 국제사회의 철군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등의 시리아 압박이 거세질 전망이다. 레바논 내 정정 불안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모호한 철군 발표=시리아는 '2단계 철수안'을 제시했다. 우선 레바논 전역에 배치된 시리아군을 동부 베카 계곡으로 완전히 이동하고, 추후 레바논.시리아 국경에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이번 철수안이 1989년 타이프 협정을 완전 준수하고 2004년 유엔안보리결의안 1559호도 이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 등 국제사회의 생각은 다르다. 미 국무부는 "시리아가 모든 군대와 정보요원을 레바논에서 즉각 완전 철수해야 한다"고 5일 재차 강조했다. 철군 일정과 정보요원 철수를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최종 철수지역이 국경지대의 레바논 쪽인지 아니면 자국 내인지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5월이 분수령=범아랍 일간 알하야트는 이번 철군 발표와 서구의 반응을 놓고 "5월을 향한 주도권 싸움"이라고 설명했다. 이때 레바논 총선이 실시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5월 이전,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4월까지 시리아군과 정보요원의 완전 철군을 요구한 것도 이를 위해서다. 미국.프랑스.유엔은 지난해 채택된 결의안 1559호에 의거, 시리아군의 완전 철수 이후 외세의 개입 없이 레바논에서 자유선거가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리아가 철수 일정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5월 총선까지는 개입하고자 하는 계산이 담겨 있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철군 이후에도 레바논 내 시리아의 역할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언급했다. 군을 철수하더라도 정보기관을 남겨 두면서 친시리아계 의회 및 정부를 유지하겠다는 속셈이다. 결국 시리아가 레바논 내 영향력을 완전 포기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적대국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골란 고원의 반환을 위해서라도 레바논을 협상카드로 계속 이용할 전망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철군 약속 '타이프 협정' 16년 만에 효력

시리아의 철군 발표로 1989년 타이프 협정이 16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타이프에서 체결된 이 협정은 그동안 레바논의 사실상 헌법 역할을 해 왔다.

이 협정에는 레바논 내 시리아군을 2년 안에 동부 베카 계곡으로 철수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시리아는 이 결정사항을 지난 15년 동안 무시해 왔다. 최종철수를 논의하는 양국의 군사위원회 모임조차 열지 않았다.

시리아 군대는 레바논 내전이 시작된 다음해인 76년부터 레바논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이슬람세력과 좌파세력의 협공에 패배위기에 몰린 기독교도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한때 4만 명에 달하던 시리아군은 현재 1만4000여 명 규모로 줄어들었다. 문제는 시리아가 레바논 주둔군을 통해 레바논 내정을 원격조종해 왔다는 것. 특히 레바논 전역에 배치된 시리아 정보기관은 레바논에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예컨대 시리아는 2004년 9월 친시리아계 레바논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용이하게 만드는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게끔 막후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결국 라피크 알하리리 총리가 사임하는 등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미국 주도하에 유엔은 지난해 9월 안보리결의안 1559호를 채택했다. 레바논 내 모든 외국군 철수가 골자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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