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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환율’, 미국·EU는 ‘IMF 쿼터’ 양보 … 한국이 꺼낸 카드 통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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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경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방한한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을 만나 포옹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번 경주회의가 G20의 정책공조에 대한 우려를 잠재웠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연합뉴스]

드라마틱했다. ‘전격’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합의였다. 23일 경주에서 폐막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결과 말이다. 환율과 국제통화기금(IMF) 개혁 같은 굵직한 핵심 현안에 대해 참가국들은 상당한 진전을 봤다. 이런 이슈를 11월의 서울 정상회의에서 최종 추인하면, 국제 경제협력을 위한 ‘최상위 포럼’인 G20의 지위가 재확인되는 셈이다.

 첨예한 환율 문제에선 중국이 전향적으로 양보했고, IMF 쿼터 개혁에선 미국과 유럽이 한발 뒤로 물러섰다. ‘주고받기식 빅딜’이라기보다는 이번에 합의가 안 되면 모두에게 손해라는 공감대에 따른 것이다. 일부 외신이 회의 전부터 ‘G20 무용론’을 보도하자 회의장엔 비장감마저 돌았다. 이런 위기감이 오히려 막판 대타협의 계기가 됐다.

한국은 자기 아이디어를 갖고 중재하고 설득하며 의장국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익명을 원한 G20 준비위 관계자는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지적인 리더십을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대안을 제시했다”며 “이제 아무도 한국을 허수아비 의장국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주도의 환율 해법=미국은 회의 첫날, 대외불균형을 줄이기 위해 경상수지를 국내총생산(GDP)의 4% 이내로 줄이자는 의견을 냈다. 이 아이디어는 사실 한국에서 시작된 것이다.

 대외불균형을 해결하려면 반드시 환율을 언급해야 하지만 과거의 경우 항상 중국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중국은 토론토 정상회의 직전 위안화 환율 변동폭을 일부 확대했다. 당시 G20은 중국의 이 같은 조치를 환영한다는 표현을 공동선언문에 넣으려 했지만, 이마저도 중국의 반대로 성사되지 않았다. 중국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이 고민 끝에 돌파구로 제시한 게 경상수지였다. 미국이 즉각 관심을 보였다. 미국은 이를 토대로 회원국을 설득했다. 중국도 호의적이었다. 10일 워싱턴에서 열린 IMF·세계은행 연차 총회에 참석한 이강 인민은행 부총재는 앞으로 3~5년 동안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GDP의 4% 아래로 축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내수를 늘리고 수출 비중을 줄여나가겠다는 얘기고, 이를 위해서는 위안화 절상이 동반돼야 한다. 최근 중국 공산당 5중전회에서도 지역·계층별 불평등 해소를 위해 경제정책의 초점을 외형 성장에서 내실로, 수출에서 내수로 점차 옮겨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경상수지 불균형 ‘가늠자’ 만든다=경주 회의에선 경상수지 흑자국인 독일과 일본 등이 4% 수치를 못 박는 데 반대했다. 흑자를 내는 사연이 제각각 다른데 구체적인 수치로 변동폭을 정하는 건 곤란하다는 이유였다. 논란 끝에 G20은 “과도한 대외불균형을 줄이고 경상수지를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정책수단을 추구한다”고 합의했다. 항상 흑자가 나는 자원부국을 포함해 국가적·지역적 환경을 고려하되, 경상수지 불균형이 과도한지 아닌지를 보여주는 ‘예시적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일종의 불균형 가늠자 역할을 하는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만들지가 관건이다.

 이는 경제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합의다. ‘경상수지 흑자는 항상 선’이라는 국제사회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상수지 흑자국에 대한 합리적 규제안을 만든 것도 눈길이 간다. 브레턴우즈 체제 이후 경상수지 적자국은 외환보유액이 줄고 통화가치 하락 압력에 직면했다. 하지만 경상수지 흑자국을 제어할 방법은 없었다.

 환율 관련 언급이 ‘시장지향적인(Market-Oriented) 환율’에서 ‘시장결정적인(Market-Determined) 환율’로 바뀐 건 주목할 대목이다. 비슷하게 보이지만 큰 차이가 나는 말이다. G20 준비위 핵심 관계자는 “시장지향적은 ‘시장에 많이 맡기도록 노력하겠지만 필요하면 시장에 개입한다’는 뉘앙스가 있지만 시장결정적은 ‘시장 개입을 안 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합의를 강제할 구속력이 없다는 점에선 회의론도 나온다. G20 준비위 측은 “회원국 간의 압력이나 국제사회의 이미지 등을 감안할 때 자발적으로 이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IMF 개혁 마침표 찍었다=IMF 쿼터를 신흥개도국과 과소대표국으로 5% 이상 이전한다는 합의는 이미 지난해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에서 나왔다. 하지만 누구 지분을 줄여 누구에게 줄지를 정하는 게 골칫거리였다. 어느 나라도 지분이 줄어드는 상황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총론에서 합의하고도 각론에서 헤맬 수도 있는 의제였다. 경주 회의에선 쿼터 이전 규모를 기존에 합의한 ‘5% 이상’에서 ‘6% 이상’으로 높였다. 더 중요한 것은 논란의 핵심이었던 쿼터 이전 공식에 완전 합의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IMF 비토권을 유지하는 선에서 쿼터 일부를 양보했다. IMF는 85%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그래서 쿼터 17%를 보유한 미국이 유일하게 ‘노(NO)’라고 할 수 있는 국가였다. 합의안에 따르면 미국 쿼터는 16%대로 줄어든다.

유럽도 이사국 자리와 지분을 내놨다. G20 경주회의를 앞두고, 그리고 회의 중간에 G7이 따로 회동을 한 것도 미국과 유럽이 IMF 개혁안에 합의하기 위해서였다. 지분 이전으로 쿼터 순위 6위였던 중국은 미국과 일본에 이어 3위에 오르게 됐다. 또 IMF 자체 예상에 따르면 인도·브라질·러시아가 8~10위를 차지하는 등 잘나가는 신흥국들이 제 경제력에 맞는 ‘IMF 발언권’을 행사하게 됐다.

서경호·조민근 기자

경주 G20 공동선언문 요지

우리는 직면한 도전과제를 완벽히 관리해야 한다는 긴박감을 갖고 만났다. 공조 없는 대응은 모두에게 해로운 결과를 야기할 것이다. 협력은 필수적이다.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반영될 수 있도록 보다 시장 결정적인 환율제도로 이행하고 경쟁적인 통화절하를 자제한다. 선진국(기축통화국 포함)은 환율의 과도한 변동성과 무질서한 움직임을 경계한다.

 우리는 모든 형태의 무역 보호조치를 배격하고 무역장벽을 더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과도한 대외불균형을 줄이고, 경상수지를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정책수단을 추구한다. 우리가 합의할 예시적인(indicative) 가이드라인에 의해 큰 폭의 불균형이 지속된다고 평가될 경우 G20 회원국의 상호평가를 통해 불균형의 본질과 조정을 가로막는 근본원인을 평가한다. 대규모 자원 생산국 등 일부 예외는 인정한다.

약속 이행을 위해 IMF가 대외 지속가능성의 진척 상황과 재정·통화·금융·구조개혁·환율·기타 정책의 일관성을 평가하도록 요청한다.

 직면한 어려운 도전과제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위험을 완화하고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종합적인 행동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는 또 IMF의 지분 개혁을 합의했다. 내년 연차총회까지 최빈국의 투표권을 보호하되, 역동적인 신흥개도국과 과소대표국으로 쿼터 비중 6%포인트 이상 이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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