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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조조처럼 …‘연환계’ 덫에 걸린 세계 금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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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최근 몇 년간 세계 경제의 동향을 살펴보면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화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세계금융의 개방화와 국제화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과거에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속도와 규모로 빠르게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로 전이되고 파급돼 왔음을 알 수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발생한 금융경색으로 처음에는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거나 외화 부채를 과다하게 보유한 한국이나 동유럽 국가 등 일부 나라들이 외화유동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서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 상황으로 전이됐다.

최근에는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뿐 아니라 페루, 콜롬비아, 브라질 등 남미 국가와 같이 선진국도 아닌 주변 국가에 불과한 나라들에까지 해외에서 밀려 들어오는 과잉유동성의 불길에 휩싸이고 있다. 이른바 신흥국들인 이들 국가에서는 해외에서 갑자기 밀려와 넘쳐나는 외화를 관리하기 힘들어 외국자본에 대해 특별과세 제도를 도입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넘쳐나는 외화로 유동성 관리에 어려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국 통화가치가 급등하는 등 환율의 변동성이 커짐에 따라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경제의 중심축 사이의 환율 협상이 경제의 영역을 넘어 정치·외교적 분쟁으로 격화되기 시작하고 있다. 애초에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에 비해 유동성 위기는 어느 정도 수습된 상황이기는 하지만, 개방화되고 자유화된 세계 금융시장의 연결고리를 통해 잠재적인 불안과 분쟁요인들은 오히려 점차 확대되고 지역적으로도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의 자유화와 개방화라는 명목으로 전 세계의 금융시장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중심으로 하나로 연결돼 버린 지금, 어느 한 곳에서 불이 나면 자연히 다른 곳으로 불길이 번지게 돼 있다. 그 옛날 『삼국지』엔 적벽대전을 앞둔 조조의 군대가 ‘연환계(連環計)’에 따라 모든 배를 하나로 묶고 있다가 바람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자 대수롭지 않은 화공(火攻)에 우왕좌왕하다 자멸해버린 것처럼 자기가 설치한 덫에 스스로 빠져든 것과 다를 바 없다.

 금융의 세계화가 모두의 안정과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지만, 조조의 ‘연환계’처럼 바람 한번 잘못 불면 떼죽음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이 이번에 확연히 증명된 셈이다.

 물론 금융의 세계화 추세가 이미 되돌리기 어렵다는 현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자기 책임과는 무관하게 어쩔 수 없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이 초래한 재앙과 고통까지도 우리가 피해가기는 어렵게 되었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현 시점에서 우려되는 부분은 이번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서브프라임 등 미국의 문제가 일시적인 미봉 상태에 있을 뿐 근본적인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아직도 미국의 주택 여섯 채 중 한 채는 이른바 ‘깡통주택(값이 담보가치 이하로 떨어져 매각해도 대출금을 상환할 수 없는 주택)’이라는 현실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조조의 ‘연환계’에 빠진 세계 금융은 불안을 완전히 떨쳐버리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지금 월가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올 11월 이후 1조 달러 규모의 유동성을 추가로 시중에 살포할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만일 사실이라면 이를 계기로 선진국이건 주변국가이건, 강대국이건 약소국이건,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국가가 다시 한번 환율전쟁에 빠져들게 될 위험이 매우 크다.

한택수 국제금융센터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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