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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욕망이 꿈틀대는 백화점에서 근대화를 느끼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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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호 08면

1 ‘패션 상점’(1913), 아우구스트 마케(1887∼1914) 작, 캔버스에 유채, 50.8×61㎝, 베스트팔렌 주립미술관, 뮌스터

“나는 어디로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쓰꼬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중략) 허리를 굽혀서 나는 그저 금붕어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중략) 나는 또 회탁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서는 피곤한 생활이 똑 금붕어 지느러미처럼 흐늑흐늑 허비적거렸다.”

문소영 기자의 명화로 보는 경제사 한 장면 <16> 백화점의 모던 보이 이상과 아케이드의 산책자 보들레르

처음 이상(1910∼37)의 『날개』를 읽으면서 이 구절을 봤을 때 ‘미쓰꼬시’가 어디인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그곳은 바로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점 구관으로, 당시에는 일본 미쓰코시 백화점의 경성 지점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백화점 옥상에 금붕어 가게라도 있었던 걸까?

2 아르코 미술관 ‘이씨의 출발’전 중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정원 사진을 전시한 코너 3 ‘친구의 초상’(1935), 구본웅(1906∼53) 작, 캔버스에 유채, 62×50㎝,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그곳엔 수족관과 카페가 딸린 옥상정원이 있었다. 1930년 개장한 이 백화점은 정찰제나 대매출(세일) 같은 신식 판매 제도로도 충격파를 일으켰지만, 무엇보다도 서양식 상품을 늘어놓은 휘황찬란한 쇼윈도와 엘리베이터, 미술관, 그리고 그 옥상정원으로 장안의 화제가 됐다. 구경 좋아하는 사람들은 살 것이 없어도 미쓰코시로 몰려왔고, 돈푼이라도 있으면 옥상정원에서 어깨에 힘을 주고 차를 마셨다.

그 모습을 찍은 사진이 올해 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에서 열렸던 ‘이씨의 출발’전(10월 13일 폐막)에서 전시됐다(사진2). 고풍스러운 양복과 한복 차림의 사람들이 함께 차를 마시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요즘 신세계백화점 옥상 트리니티 가든에서 조각 작품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진다.

그때도 지금처럼 백화점은 상점 이상의 복합 문화공간이었다. 독일의 평론가 발터 베냐민(1892∼1940)이 백화점의 전신이라 할 만한 아케이드에 대해 말한 대로라면, 소비자의 “욕망을 북돋우는 데 몰두하고 예술도 그에 봉사하도록 하는” 공간인 것이다. 더구나 그 시대에는 백화점 방문이 짜릿한 근대화 체험 그 자체였다. 그 매력에 빠져서 살 것도 없이 미쓰코시를 들락거리고 그 일대 혼마치(지금의 충무로) 카페들을 전전하는 모던 보이, 모던 걸을 혼부라당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들 중에는 아무 생각 없는 이들도 있었겠지만, 근대화에 매료되면서도 근대화를 주도할 수는 없는 무력한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내면적 갈등을 일으키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모던 보이 중 하나가 이상이었다. 그는 일단 뼛속까지 도시인이어서 커피를 무척 즐겼다. 한때 시골에 머물며 무료함에 시달렸을 때는 주변 풍경에 대해 이렇게 심술궂게 쓰기도 했다. “나는 처음 여기에 표착하였을 때 이 신선한 초록빛에 놀랐고 사랑하였다. 그러나 닷새가 못 되어서 이 일망무제의 초록색은 조물주의 몰취미와 신경의 조잡성으로 말미암은 무미건조한 지구의 여백인 것을 발견하고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쩔 작정으로 저렇게 퍼러냐?” 녹색 예찬이 일종의 도덕으로 요구되는 시대에 이 불온한 말을 보고 있으면 슬쩍 반항의 쾌감도 느껴진다.
그렇다고 이상은 도시 풍경을 무비판적으로 바라보지도 않았다. 근대 자본주의적 풍경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단편 ‘실화’에서 섣달 도쿄의 한 백화점 취주악대를 묘사한 구절에서 드러난다.

“진따(취주악대)는 전원 네 사람으로 조직되었다. 대목의 한몫을 보려는 소백화점의 번영을 위하여 이 네 사람은 클라리넷과 코오넷과 북과 소고를 가지고 선조 유신 당초에 부르던 유행가를 연주한다. 그것은 슬프다 못해 기가 막히는 가각풍경이다. 왜? 이 네 사람이 다 묘령의 여성들이더니라. 그들은 똑같이 진홍색 군복과 군모와 ‘꼭구마’를 장식하였더니라.”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대형마트나 길거리에서 마이크와 미니스커트와 루즈 삭스로 무장한 아가씨들이(때로는 춤추는 풍선과 함께) 춤을 추며 외치는 것을 볼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이상은 근대적 풍경의 한 씁쓸한 단면, 즉 ‘상품의 신전’에 풍악과 가무가 바쳐지고 그 풍악과 가무의 제공자들에게서 무언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느껴지는 장면을 이렇게 포착했다.

이상의 벗이자 당대의 드문 표현주의(Expressionism) 화가였던 구본웅(1906∼53)이 강렬한 필치로 그린 ‘친구의 초상’(사진 3)은 꼭 이상의 초상이라고 믿고 싶은 작품이다. 저 파이프를 빼뚜름하게 물고 심드렁한 듯하면서도 날카롭게 눈을 뜨고 있는 반항적이고 냉소적인 얼굴이 이상의 글과 참으로 잘 어울리니 말이다.이상은 난해한 언어의 시와 소설로 자신의 내면세계만 파고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조춘점묘’나 ‘추등잡필’ 같은 수필에서 평이한 언어로 일상과 사회 이슈에 대해 재치 있는 비평을 하기도 했다. 그가 지병에 시달리다 요절하지 않았다면 그의 몇 세대 전 선배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1821~67)처럼 도시의 산책자(Fl

neur)로서 근대적 풍경에 대한 본격적인 비평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도시를 천천히 걸으면서 관찰하고 체험하는 근대의 인간을 산책자라고 칭했다. 20세기 초 한국의 모던 보이가 백화점을 거닐었다면 19세기 중반 파리의 산책자는 아케이드를 많이 거닐었다.

당시 최첨단 도시 파리에서 자본주의와 소비가 급속히 발달하면서, 상점 건물들이 양쪽으로 죽 늘어서 있는 길에 철골 유리 지붕이 씌워져 눈비 오는 날에도 편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했고, 이것을 아케이드라고 부르게 됐다. 독일 화가 아우구스트 마케(1887~1914)의 그림(사진1)에 나오는 것도 아케이드다. 그는 강렬한 색채로 쇼핑하는 사람들과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는 근대적 풍경을 특히 많이 그렸다.

보들레르는 베냐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파사젠베르크 Passagenwerk)』를 집필하는 데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됐다. 베냐민의 죽음 때문에 미완으로 끝난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기존의 저술 개념과 다르게 수많은 인용문의 집합에 베냐민의 메모가 곁들여진 일종의 몽타주로서 아케이드와 소비, 유행 등을 통해 근대 자본주의를 사유한 것이다. 여기에서 베냐민은 산책자가 때로는 군중에서 떨어져 아케이드의 자본주의적 풍경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때로는 군중 속으로 잠겨 그 풍경의 환상에 열광하고 도취되기도 한다고 보았다. 이것이 모던 보이 이상의 모습이기도 했다.


영자신문 중앙데일리 문화팀장. 경제학 석사로 일상 속에서 명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관련 저술과 강의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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