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 작은 데다 약골, 이기려고 독하게 연습했습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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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호 14면

링닥터가 물었다. “이제 그만 하실래요?” 그녀가 소리쳤다. “제가 언제 그만한다고 했어요?” 결국 그녀는 10라운드를 모두 뛰었다. 얼굴은 처참할 만큼 일그러졌다. 잔뜩 부어 오른 눈과 코에서 피가 흘렀다. 판정 결과 2-0 승리. 엉망진창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지난달 12일 경기도 안양체육관에서 열린 주제스 나가와(24·필리핀)와의 라이트플라이급(48.980㎏) 4대 기구 통합 챔피언 결정전에서 이긴 김주희(24·거인체육관)다.

여자프로복싱 4대 기구 세계 통합챔피언 김주희

여자국제복싱협회(WIBA)는 22일(한국시간) 체급별 세계랭킹을 발표했다. 여러 기구가 난립한 여자 프로복싱에는 챔피언이 여럿이다. WIBA는 모든 기구의 선수를 대상으로 종합 랭킹을 산출했다. 다른 체급에는 월드챔피언, 잠정챔피언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지만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은 김주희뿐이다. WIBA는 김주희의 이름 옆에 수퍼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따로 부여했다. 그녀를 세계 유일의 챔피언으로 공인한 것이다.

WIBA는 체급 발표에 앞서 ‘올해의 선수(Boxer of the year)’를 발표했다. 역시 김주희였다. 김주희는 아시아 최초의 수상자로서 12월 27일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가한다. WIBA는 김주희가 WIBA를 비롯, 여자국제복싱연맹(WIBF)과 세계복싱연합(GBU) 챔피언 벨트를 동시에 차지했고, 나가와를 꺾어 세계복싱연맹(WBF) 타이틀까지 따낸 점을 높이 평가했다. 2004년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2007년 세계복싱협회(WBA) 챔피언에 올랐다가 타이틀을 반납한 김주희는 세계 최초로 6대 기구의 전·현직 챔피언이 됐다.

나가와와의 경기는 평소 여자 프로복싱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까지 화제가 됐다. 사람들은 형편없이 일그러진 미녀 복서의 얼굴을 보며 측은함과 대견함을 함께 느꼈다. 경기를 끝낸 김주희의 얼굴은 눈두덩이 야구공만하게 부풀어오른 데다 피와 멍으로 범벅이 됐다. 그러나 김주희는 승리가 확정되자 상한 얼굴 가득 행복한 웃음을 터뜨렸다. 한 달여가 지난 지금도 김주희의 얼굴에서는 붓기가 빠지지 않았다.

“얼굴이 엉망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경기 후반엔 더 세게 몰아붙였어요. 제 피부가 워낙 얇아 상처가 많이 난 것이거든요. (심판이) 얼굴 보고 점수를 깎을까 봐 확실한 득점이 필요했어요. 이겨도 홈 어드밴티지 때문이라는 말을 듣기 싫었거든요.”

6라운드 끝나고 링닥터가 김주희에게 “계속 싸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절대 포기 안 해요”라고 소리쳤다. 7라운드에도 똑같은 대화가 오갔다. 8라운드부터는 아무도 그녀를 말릴 수 없었다. 다부진 파이터 나가와도 김주희의 펀치를 맞고 휘청댔다. 끈질긴 인파이팅 끝에 김주희는 승리했다. 라커룸에 들어왔을 때는 두 다리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거울을 봤더니 예상보다 더 끔찍했다. 그녀는, 그래도 웃었다.

“다른 경기가 끝나면 엉엉 울었거든요. 힘들기도, 감격스럽기도 해서요. 그런데 이번에는 웃음이 나더라고요. 그만큼 온 힘을 다 해서 희열을 느꼈기 때문일 거예요.”

김주희는 곧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대체 왜 이렇게 됐느냐”고 물었다. 복싱 선수라고 대답했더니 “오늘 김주희 선수가 4대 기구 통합 챔피언에 올랐다던데 그분이 롤모델이겠네요?”라고 물었다.

김주희는 예쁘다. 평소 트레이닝복 차림에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다니는데도 하얀 얼굴과 선 고운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사실 제가 예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저도 여자니까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 좋아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복서치고는 예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 빼주시면 더 좋을 텐데…”라며 까르르 웃는다.
그녀가 정말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싶을 때는 링 위에 섰을 때다. 복싱을 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예쁘고 싶어서 옷도, 머리도 화려하게 꾸민다.

“음…. 링에 서기 직전 거울을 보면 예쁘고 또 멋있어요. 제 모습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이번 같은 경기를 끝내고 내려오면 엉망이 되지만요.”

그녀를 지도하는 정문호(51) 관장은 “요즘 애들치고 저만큼 안 예쁜 애가 어디 있나?”라며 퉁을 준다. 김주희가 정 관장을 처음 만난 건 1997년이다. 열두 살 꼬마는 먼저 복싱을 시작한 언니(김미나·29)를 따라 체육관을 찾았다.

“그땐 정말 예뻤는데 매를 맞아 얼굴이 찌그러졌대요.”
그녀는 배고프게 자랐다. 이혼한 아버지는 실직 상태였고 뇌경색으로 쓰러져 있었다. 집안에 쌀이 없는 날이 더 많았다. 육상 선수를 꿈꾸다 포기하고 언니의 도움으로 문래중학교 1학년이던 13세 때 복싱을 시작했다. 세계챔피언이 되면 집안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14세에 한국 여자복서 1호가 된 김주희는 2004년 18세 나이로 세계 최연소 세계챔피언(WIBF)이 됐다.

그렇지만 김주희가 ‘자갈밭’을 벗어난 건 아니었다. 2006년 발가락 골수염으로 오른쪽 엄지발가락 뼈를 1.5㎝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복싱을 접어야 할 정도로 큰 수술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실밥을 뽑자마자 훈련을 시작했다. “이러다 죽고 싶냐”라는 말을 흘려 듣고 훈련하다가 발목 인대가 늘어나 걷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훈련을 하고 정 관장 등에 업힌 채 계단을 내려왔다. 빈혈과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기도 했다.

“저, 종합병원이에요. 아프지 않은 곳을 물어보시는 것이 빠를걸요? 제가 원래 약골이거든요. 손이 작고 뼈대도 강하지 못해요. 신체 능력이 일반인보다는 낫지만 세계적인 수준은 아닙니다. 그럼 제게 뭐가 남겠어요? 독하게 노력하는 수밖에요.”

정 관장은 “주희의 장점은 끈기다. 12년 동안 훈련하면서 결석한 날이 사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원투 스트레이트를 못 하기에 ‘밤 새워서라도 해봐’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출근했더니 그때까지 원투 스트레이트를 치고 있더라. 그렇게 고지식하다. 지금도 하루 6~8시간씩 하는 훈련이 모자라 나 몰래 운동하는 걸로 안다”고 전했다.

챔피언의 씨앗은 가난이었다. 가난과 싸우느라 더 독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가난의 유산은 아직 남아 있다. 정 관장은 “어려서 너무 못 먹고 자란 탓에 성장·발육이 정상적이지 못해 부상 회복이 늦다. 빈혈로 고생할 때 수혈을 하도 많이 받아서 몸에 제 피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김주희에게 꿈을 물었다. 세계타이틀 4개를 가지고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가난하다. 또래들처럼 맛있는 음식을 찾아 다니고, 화장품도 사고 싶지만 그때마다 요양병원에 누워 있는 아버지가 생각난단다. 1년에 한 번꼴로 잡히는 경기의 대전료는 3000만~5000만원. 어릴 때는 세계챔피언이 되면 많은 돈을 버는 줄 알았지만 훈련비와 병원비를 떼고 나면 생활하기도 빠듯하다.

그러나 그녀의 꿈은 여전히 아버지, 그리고 주위 사람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많은 돈을 벌지 못하지만 그녀를 도와주는 몇몇 손길 덕분에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는다. 올해 중부대 엔터테인먼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의 대학원 교육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운동선수라고 무식해선 안 된다며 매일 영어단어 문제를 냈던 정 관장에게도, 장학금을 주며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중부대에도 신세를 갚아야 한다.

꿈을 펼치는 길은 복싱밖에 없다. 한 체급(미니멈급·47.627㎏) 낮춰 두 체급 통합 타이틀 획득도 계산하고 있다.

한참 예쁠 나이에 김주희는 로션조차 잘 바르지 않는다. 아이섀도를 칠할 곳에 시퍼런 멍이 든다. 늦잠 자기를 좋아하지만 오전 5시에 일어나 로드워크를 한다. 못 먹고 자라 한이 맺혔지만 일년 내내 체중 조절을 한다.

“복싱하면서 가난에 찌든 마음을 많이 고쳤어요. 복싱을 빼면 제겐 취미도, 특기도 없습니다. 더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먼 훗날 제 꿈인 교수나 지도자가 됐을 때 후배들이 저를 보고 포기하지 않도록요. 그리고 여자복싱이 인기를 끌 수 있도록 화끈한 경기를 펼쳐 보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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