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은 제2의 고향… 애정 있어 비판할 수도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미즈노 슌페이 전 전남대 일문과 교수

"한국인의 아픔을 더 깊게 이해하지 못한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2의 조국인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잘못된 점도 비판할 수 있는 겁니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비판하는 책도 쓸 계획입니다."

'반한(反韓)활동' 논란으로 네티즌들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는 미즈노 슌페이(38.전 전남대 일문과 교수)씨가 입을 열었다. 그는 지난달말 본지 기자와 만나 그간의 고통스러웠던 심경을 털어놓았다. 논란이 불거진 이후 언론과 가진 첫 인터뷰다.

(미즈노씨는 얼마전 일본 극우인사가 출연한 일본 방송 프로그램에서 한국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일본에서 '노히라 슌스이' 란 필명으로 한국을 비판하는 책을 여러 권 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그가 겉으로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친근한 일본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뒤로는 숨어서 한국을 헐뜯는 이중적 태도를 취해왔다고 분개하고 있다. 그가 몸담았던 전남대 사이트에는 그를 학교에서 추방하라는 네티즌들의 글까지 올라왔었다.)

그동안 맘 고생이 심했던 듯 늘 싱글벙글했던 그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논란이 불거진 뒤에는 방송 섭외도 전혀 들어오지 않더군요. 한 라디오 프로그램은 네티즌들의 따가운 시선이 부담스러웠던지 갑자기 섭외를 취소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일본방송 출연이나 일본에서 낸 책에 대해 네티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며 "조만간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이번 논란에 대한 해명글을 띄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즈노씨는 또 "무조건 한국인편만 들어주는 것이 친한파(親韓派)라면 친한파가 되고 싶지 않다"며 "당분간 방송활동을 자제하고 연구에만 몰두하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8년간 몸 담았던 전남대 일문과를 떠난 것은 반한 논란 때문이 아니라 계약기간이 만료됐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

-최근 일본의 극우인사가 나온 프로그램('니혼 테레비'의 '제너레이션 정글')에 출연해 네티즌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어떻게 된 것인가.

"그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진지한 토론 프로가 아니었다. 토론 주제가 '한류'라고 해서 나갔는데 느닷없이 민감한 역사문제, 성형문제 등이 거론돼 어처구니가 없었다. 성형수술과 관련된 부분은 내 순서에서 '한국에서 성형수술도 하지만, 눈썹수술도 많이 한다'라고만 말했을 뿐이다. 토론은 점차 일본의 우익인사 두 명의 주장에 대해 한국인 남자 두 명이 강력하게 맞서는 식으로 진행됐다. 나머지 사람들은 말할 틈도 없었다. '일제시대 조선의 인구가 늘어났으니까 식민지 논리가 정당하다'는 한 일본 우익인사의 발언에 대해 '인구증가 만으로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반론하고 싶었지만, 토론이 워낙 격해져서 말할 틈이 없었다. 문제가 됐던 다른 우익 발언에 대해서도 반론하려 했지만 반론의 근거를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말하지 못했다.

방송이 끝나고 스탭에게 '한류에 대해 토의한다고 해놓고 이게 뭐냐'고 항의했더니 '이 프로에서 그런 걸 기대하지 마라, 오락프로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방송에 나왔던 우익인사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프로그램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반박할 걸 그랬다는 후회는 남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일본에서 한국을 비판하는 내용의 책을 여러권 냈다는데.

"일본에서 출간한 책에 노히라라는 필명으로 돼 있어 네티즌들의 오해를 샀다. 내가 만약 신분을 속이려 했다면 경력과 사진을 넣었겠는가. 문제가 된 '한국인의 일본위사'는 한국어판 출간이 예정돼 있었지만 출판사가 망해버려 출간되지 못했다. 문제가 된 책 내용을 살펴보자. 나는 책에서 '고대 일본어가 한국어이고, 일본이 백제의 식민지였다. 일본 천황의 조상은 모두 한국인이다'라는 주장은 지나친 과장이라고 지적했다. 백제가 일본에 미친 영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삼국사기 등에도 나와있지 않은 내용을 100% 믿어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국보 1호인 반가사유상이 한반도에서 건너왔다지만 일본의 국보 1호는 이것 말고도 몇개가 더있다.

그러나 이같은 부분이 책의 주 내용은 아니다. 주 내용은 일본인이 의도를 갖고 날조한 역사를 한국인이 그대로 믿어버리고 일본에 이를 역수출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조선합병 전 일본은 '일본천황의 조상이 백제인'이라는 논리로 한일 합방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또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전에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천황이 직접 자신의 조상이 백제인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일제시대 지배논리를 또다시 써먹은 것이다. 일제시대 논리를 그대로 베껴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일본어 단어 중 '쿠다라나이(하찮다, 시시하다 란 뜻)'를 들어 일본이 백제의 식민지였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일각에서는 '쿠다라(백제)'와 '나이(없다)'가 합쳐진 이 단어가 '백제 물건이 아니면 하찮은 물건'이란 뜻으로 백제의 막대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말이라고 주장하는데, 실제로 일본 고어에는 쿠다라나이란 말이 없다. 일제시대에 한반도 고대사를 폄하하기 위해 '백제는 없다,백제는 하찮은 나라다'란 뜻으로 만든 말이 와전돼 내려온 것이다. 결국 어떤 의도를 갖고 역사를 왜곡하지 말자는 것이 책의 주제다. 남이 하는 왜곡만 왜곡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

-책 내용에 대해 일본에서 반응은 어땠나.

"일본 보수파에게도 욕을 먹고 있다. 그쪽 주장에 충분히 공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일본 우익)은 '우리가 하는 일본역사의 재평가는 한국 사람들이 하는 짓(왜곡)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누구도 역사를 왜곡하면 안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역사교과서 문제는 양측의 연구자,학부모, 교사 등이 서로의 역사교과서를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외교적으로는 풀지 못하는 문제다."

-본인이 친한파인지 아닌지 정체성을 밝히라는 네티즌들도 있다.

"나는 무조건 한국편만 드는 사람이 아니다. 객관적이고 타당한 근거가 있으면 비판도 한다. 한국이 싫어서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다. 한국은 나에게 있어 제2의 조국이다. 이번 파문에 대해서는 한국인의 아픔을 전혀 모르는 바가 아닌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 잘못만 지적한 것처럼 알려졌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친한파가 무조건 한국인 편만 들어주는 것이라면 나는 아니다. 내가 무조건 한국인 편만 든다면 나는 연구자가 아닌 연예인이라고 불려야 할 것이다.

일본으로 돌아가면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서 책을 쓸 것이다. 일본 일각에서는 일제시대 조선학교에서 외국어 시간 개념으로 조선어 연구 시간이 있었다는 이유로 일본이 한국의 어학교육을 깨우쳐줬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잘못된 주장들을 비판할 것이다. 이 외에도 일본에 잘못 알려진 한국역사가 많다. 욕을 먹겠지만 어쩌겠는가. 중간에 서있는 사람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앞으로는 방송활동을 안하고, 연구에만 몰두하겠다. 간곡한 요청이 있으면 할 수도 있지만 일단 방송에 뜻을 두지 않겠다. 한국어 학자이기 때문에 한국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생각이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 중간에 서있는 사람으로서 양국이 올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이번 파문 때 한국인 아내는 '왜 당신은 한국인의 아픔을 좀더 깊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는가'라고 따끔한 지적을 했다. 공감하는 부분이다. 한국,일본 양쪽에서 욕을 먹게 돼 있는 것이 내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

정현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