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분권실험 8개월] 풍속도 바뀐 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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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의 터널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시작된 지율스님의 단식이 100일째에 접어들 무렵인 지난달 2일. 총리 민정비서실의 고위 관계자는 "지율스님 관련 업무가 오늘 청와대에서 총리실로 넘어왔다"며 "요새는 어렵고 복잡한 일은 다 총리실로 온다"고 했다. 그뒤 총리실의 움직임은 기민했다. 다음날인 3일 오전 이해찬 총리가 직접 지율스님 측을 방문했고, 관계 장관들을 불러 대책회의를 가졌다.

이어 남영주 총리 민정수석이 대책회의에서 확정한 협상안을 들고 지율스님 측을 찾았고 이날 밤 양측은 결국 천성산에 대한 공동 환경영향조사와 지율스님의 단식중단에 합의했다. 최근 한껏 힘을 받고 있는 총리실이 첨예한 사회갈등을 조정해낸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6월 이해찬 총리의 취임과 함께 대통령-총리의 분권실험이 시작되면서 총리실의 분위기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국무조정실 임종순 총괄심의관은 1일 "예전에는 '묻어간다'고 할 만큼 총리실이 소극적으로 일한 경우도 있었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일이 많아져 무척 바빠졌다"고 전했다. 특히 총리실은 최근 천성산 문제를 비롯, 신행정수도.새만금 사업.노사문제 등 민감한 사회갈등 현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총리실의 변신에 대한 일선 부처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해양수산부 임기택 공보관은 "총리실의 위상과 권한이 강화되면서 일하기 편해졌다"며 "전에는 청와대며 총리실이며 여러곳을 왔다갔다 하면서 눈치를 봤으나 이젠 총리실만 접촉하면 업무가 끝난다"고 했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도 "이 총리가 들어오면서 부처 간에 얽힌 사안은 거의 즉각 해결해 준다"며 "청와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 일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둘이 생겼다'는 불만과 함께 부처의 자율성이 위축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총리실이 당면 현안 아닌 장기 과제까지 챙기면서 대통령 직속의 국정과제위원회와 업무가 겹치기도 한다"며 "이 때문에 청와대와 위원회, 총리실 세 군데에 일일이 다 보고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도 "총리실이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다 보니 부처의 자율성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며 "부처가 직접 해결해도 되는 것을 총리실에 떠넘기려는 경향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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