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에다 '제2의 9·11' 음모, 영국 무슬림 청년 법정 자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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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 영국 경찰이 지난달 28일 공개한 사지드 바다트의 여권.

영국의 한 무슬림 청년이 지난달 28일 법정에서 자신이 알카에다로부터 훈련과 지령을 받은 항공기 자폭 테러범이었다고 자백했다. 말라위 이민 2세인 사지드 바다트(25)는 2003년 11월 테러 음모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지금까지 혐의 사실을 부인해 오다 이날 법정에서 전격적으로 혐의를 인정했다. 바다트의 혐의 시인에 따라 그동안 일부만 알려졌던 알카에다의 '제2의 9.11 항공기 연쇄 폭파' 기도의 전모가 드러났다.

바다트가 알카에다와 접촉한 것은 1999년이다. 영국 글루스터에서 태어나 우등생으로 자란 그는 이슬람 성직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파키스탄으로 건너갔다가 이슬람 과격파들과 접촉하게 됐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국경지대에 있는 알카에다 훈련캠프에서 자폭 테러리스트 훈련을 받고 2001년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9.11 직후 알카에다의 호출을 받아 벨기에에서 조직원과 접선해 지령을 받았다. 당시 그와 같이 훈련을 받은 동료가 2001년 12월 23일 아메리칸항공(AA) 소속 여객기에서 신발 폭탄을 터뜨리려다 체포된 리처드 리드(30)다. 스리랑카 출신 영국인 리드는 신발 뒤축에 감춘 플라스틱 폭탄에 불을 붙이기 위해 성냥을 켰다가 유황 냄새를 감지한 여승무원에게 발각돼 체포됐다. 좀도둑 출신으로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리드는 교도소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자를 만나 극단주의자로 변신했다. 전문가들은 "그가 만약 라이터를 사용했다면 수백명이 희생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올 4월부터 항공기 내 라이터 반입을 금지한다.

바다트는 리드와 같은 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여객기를 폭파하기 위해 표를 예매했지만 탑승하지 않았다. 양심의 가책과 공포감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는 대신 폭약과 기폭장치를 분리해 자신의 침대 밑에 감춰 두었다. 바다트가 체포된 것은 리드 때문이다. 영국 정보국(MI5)이 통화 내역을 조회해 바다트를 체포하고 폭약과 기폭장치를 압수했다. 알카에다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맞춰 미국 여객기 두 대를 동시에 대서양 상공에서 공중 폭파하려던 계획은 결국 자폭 테러범을 잘못 고르는 바람에 실패했다. 한 명은 너무 생각이 없었고, 다른 한 명은 너무 생각이 많았던 것이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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