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영국 노동당 집권전략 배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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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요즘 한나라당에 외국 정당의 집권전략을 연구하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 연이은 두번의 대선 패배로 '10년 야당'신세가 되면서 앞으로 정교한 집권전략 없이는 야당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박진 의원이 보수성향인 미 공화당의 집권 과정을 배우자고 제안을 한 데 이어 이번엔 당 혁신위원회(위원장 홍준표)를 중심으로 진보 성향의 영국 노동당의 집권 성공담을 벤치마킹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혁신위는 영국 노동당이 18년간 야당으로 있다가 철저한 자기변신을 통해 집권에 성공한 점을 주목한다. 또 영국 정치권이 보수당 대 노동당의 이념 대결 구도였던 점도 이념 갈등에 휘말리고 있는 우리의 정치상황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혁신위가 주목하는 인물들은 노동당 집권의 1등 공신인 토니 블레어(현 총리), 고든 브라운(현 재무장관), 피터 만델슨(현 유럽연합 통상담당집행위원) 등이다. 이들 3총사는 1980년대 노동당이 무력증에 빠져 있을 때 당시 키녹 당수가 내세운 '당 현대화 그룹'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94년 당권을 잡은 블레어는 '신노동당(New Labour)'이란 슬로건을 내걸며 그때까지의 노동당과 차별화를 내세웠다. 그는 특히 당내 강경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전 산업의 국유화'를 명기한 당헌 4조를 삭제했다. 전통적인 평등주의 노선과 결별한 것이다. 당내 2인자인 브라운 역시 블레어를 도와 자유시장원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당의 경제정책을 개편했다. 노동당은 숙적인 보수당의 강령을 흡수함으로써 유권자들에게 '믿을 만한 정당'이란 인식을 심어줬다.

선거전술이란 측면에서 혁신위가 가장 눈여겨보는 인물은 만델슨이다. 스핀 닥터(spin doctor:언론대책 전문가)로 불리는 만델슨은 노동당의 상징을 적기(赤旗)에서 붉은 장미로 바꾸는 등 당 이미지 개선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만델슨은 '제3의 길'이 노동당의 새 진로임을 효과적으로 부각시켜 97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홍 위원장은 28일 "만델슨은 의원 중 누가 TV토론회에 나갈지도 일일이 지명해가며 과거 노동당이 갖고 있던 파괴주의.조합주의 이미지를 없애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며 "한나라당도 수구.부패.무능.특권 이미지를 벗기 위해 유사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획기적인 당 개혁을 통해 만년 야당 신세에서 벗어난 점은 한나라당이 모범사례로 배울 만하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혁신위 발족=한나라당은 이날 운영위를 열어 홍 위원장 등 18명으로 구성된 당 혁신위를 발족시켰다. 국민생각.국가발전전략연구회.수요모임 등 당내 주요 의원모임에서 2명씩 선발했고 원외인사들도 포함했다. 혁신위는 박근혜 대표에게서 전권을 위임받은 독립기구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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