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issue &] 직원들과 ‘혁신놀이’ 해보실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세탁기와 인터넷 중에 어느 것이 세상을 더 많이 바꿨을까.”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의 신간에 인용된 예시다. 의사결정을 위한 정확한 상황 진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사례였다. 국내 최대 인터넷 통신망 회사를 경영하는 필자는 이 질문 자체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정말 어느 것이 더 혁신적인 발명품이었을까. 세탁기 덕분에 여성이 가사노동에서 벗어나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여성이 돈을 벌면서 남아 선호사상이 사라졌으니 이런 변혁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 장 교수의 논지다. 세탁기가 단순히 생활의 편리를 가져오는 데 그치지 않고 여성의 사회참여라는 사회적 변혁까지 이끌어냈다는 측면에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인터넷의 역할도 만만치 않다. 역사 이래 사회적으로 가장 평등한 소통을 주도하고, 장애인 등 소수자(minority)를 세상과 자유롭게 만나게 해준 것이 인터넷이다.

 세탁기와 인터넷을 다소 장황하게 대비시킨 건, 긍정적 평가를 받는 혁신은 어떤 모습이 돼야 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다. 혁신에 대해 개념과 기준은 제각각이다. 좁은 의미론 끊임없는 프로세스나 기술 개선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기업혁신에 두 가지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우선 기업혁신의 결과가 세탁기나 인터넷처럼 사회의 공동선(共同善)으로 작용해야 한다. 혁신의 결과가 기업 이익만 늘려 그들만의 잔치가 돼선 곤란하다. 기업은 사회라는 생태계 속에서 생존하는 개체다. 생태계가 건강하고 풍요로워야 개체의 미래가 밝다.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면서 공동선을 이루는 측면에서 기업 혁신은 과거 10년 동안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성과가 가장 많이 났을 것이라고 본다. 가정에 인터넷이 보급된 지 불과 10년이다, 경북 안동에서도 미국 백악관의 뉴스브리핑을 볼 수 있다. 요술램프처럼 내 소원을 들어주는 스마트폰도, 외국 유명 가수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게 해준 트위터도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불과 1년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일들이 IT 분야에서 실현되고 있다. 기업은 지속 생존할 기회를 얻었고, 사회는 세탁기만큼이나 생활의 변혁을 경험하고 있다. 물론 이런 성과가 IT 업계 덕분만은 아니다. 사회에 소비자들의 요구(Needs)가 있었고, 기업이 기술혁신을 통해 이 요구를 만족시키는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기업 혁신의 또 다른 방향성은 임직원의 자발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은 숱한 도전을 헤쳐나가는 험난한 과정의 연속이다. 이런 여정을 즐기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KT 사례를 들고 싶다. 직원들의 혁신 동력을 강화하려고 올 들어 ‘올레 혁신학교’와 ‘기적의 2박3일 행복일터 만들기’ 교육을 하고 있다. 직원들이 자신감과 긍정의 힘을 믿도록, 자기 발전을 위해 의욕을 갖도록 돕는 과정이다. 교재 없이 마룻바닥에서 서로 웃고 즐기는 ‘고정관념 없애기’ ‘긍정적 마인드 갖기’ ‘분노를 조절하기’ 등 심리치유 형태의 교육과정은 반응이 좋다. 지난 3월 시작된 이 과정에 직원 가족도 함께할 수 없느냐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모든 일은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태도와 자세가 혁신의 성패를 좌우한다. 경영진이 올바른 혁신 방향을 제시하고 직원들이 즐겁게 ‘혁신놀이’를 한다면 성공은 이미 보장된 것이다.

 역사는 미래를 보는 거울이라고 했다. 100여 년 전 세계가 나라를 열어젖힐 때 우리만 쇄국해 일제 강점 35년이라는 피눈물 나는 대가를 치렀다. 이 순간에도 기업 외부에선 강한 변화 바람이 회오리치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혁신’이 아니라 ‘스스로의 혁신’을 원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서유열 KT 홈고객부문 사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