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항전 농심배 바둑] 5연승 기적 … '불멸의 이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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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호9단이 26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선수권전 시상식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돌부처' 이창호9단이 이를 악물자 기적이 일어났다. 중.일의 강력한 적수 5명을 상대로 파죽의 5연승을 달성하며 또 한번 바둑 신화를 써낸 것이다.

이9단은 26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벌어진 한.중.일 국가대항전인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선수권전 최종전에서 중국의 주장 왕시(王檄)5단을 흑 불계로 격파하고 이 대회 6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올해 최철한9단과의 국수전에서 3대0으로 완패하는 등 1승5패라는 최악의 부진에 빠져 있던 이창호이기에 이번 5연승 우승은 더욱 값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창호의 분전으로 위기에 몰렸던 한국은 세계바둑의 왕좌 자리를 굳게 지켜냈다. 또한 이창호는 이번 우승으로 슬럼프에서 벗어나며 세계 최강자의 자리를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농심배는 한.중.일 3국이 5명씩 대표를 내세워 연승전으로 겨루는 국가대항전이다. 한국은 한종진5단, 안달훈6단, 유창혁9단이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탈락한 데 이어 믿었던 최철한9단마저 1승 후 패배하면서 최종 주자인 이창호9단이 바둑판 앞에 앉았을 때는 무려 5명의 적수가 남아 있었다. 이들을 모조리 꺾어야 한국이 우승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더구나 '보증수표'로 통해온 이창호도 갑자기 찾아온 연패의 수렁에 빠져 있었기에 5연승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이창호는 중국의 뤄시허(羅洗河)9단에 이어 일본의 장쉬(張)9단을 꺾으며 연승의 시동을 걸었다. 장쉬는 명인.본인방을 양손에 쥐고 있는 일본의 젊은 일인자로 5연승으로 가는 최대 난관으로 여겨졌고 바둑도 상당한 위기감 속에서 진행됐으나 이창호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를 돌파했다. 이어서 왕레이(王磊.중국)8단과 왕밍완(王銘琬.일본)9단을 연파하고 4연승을 거둔 이창호는 26일 삼성화재배 세계오픈 준우승자인 중국 주장 왕시를 꺾으면서 대망의 5연승을 달성했다.

이창호는 "힘든 상황이지만 국가의 명예만은 꼭 지켜내고 싶다"고 다짐했는데 그 약속을 지켜낸 것이다.

이창호는 국가대항전에서 유독 강해 농심배에서 예선 포함해 30연승, 본선에서만 14연승의 대기록을 세웠고 본인이 최종주자로 나섰을 때 단 한번도 우승을 놓치지 않는 최고의 수문장 역할을 이어갔다.

이창호9단은 중국 전역에서 몰려든 기자들로 인해 수라장이 된 인터뷰에서 "기쁘다기보다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마음이 편안하다. 농심배는 각별한 기전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제 회복할 준비가 되었다고 본다"고 우승 소감을 담담하게 밝혔다.

우승상금은 1억5000만원. 이창호는 연승상금 3000만원과 대국료 1500만원을 추가로 받는다.

이9단은 다음달 12일 중국 창사(長沙)로 가 춘란배 세계대회 결승전에 나선다. 상대는 중국의 저우허양(周鶴洋)9단.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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