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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르포] 졸업식장 33년 누빈 사진사 노용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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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 33년째 출장사진사로 일하고 있는 노용균씨가 서울의 한 대학 졸업식장에서 수동카메라로 촬영 준비를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25일 오전 서울 안암동 고려대 교정. 감색 양복 차림의 중년 신사가 찬바람을 맞으며 학사모를 쓴 졸업생 주위를 기웃거렸다. "사진 안 찍으실래요? 석 장에 3만원입니다."

한쪽 어깨에 수동 카메라 두 대를 멘 그는 33년째 졸업식장을 누비고 있는 출장사진사 노용균(58)씨.

"원판 사진 찍으세요"라며 다가서자 졸업생이나 축하객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세련된 디자인의 디지털카메라를 보여주며 손을 내저었다. 얼마냐고 묻는 사람조차 없었다. 두 시간이 흘러 졸업식이 끝날 무렵에야 한 가족을 손님으로 모셔 셔터를 눌렀다. 노씨는 "공치는 날도 많은데 이만하면 뭐…"라고 혼잣말을 뱉은 뒤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그에게 졸업 시즌은 어느덧 발은 부르트지만 남는 게 없는 서글픈 계절이 됐다. 비단 자신을 찾는 이가 없어서만은 아니다. 어쩌다 사진을 찍더라도 "사진을 보내준다는 걸 어떻게 믿느냐"고 묻는 각박한 세상 인심이 더 씁쓸한 것이다.

노씨가 처음 사진기를 손에 쥔 것은 1972년. 그보다 3년 전 스물한 살의 나이로 전남 화순에서 무작정 상경한 그는 막노동.고물장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렇게 번 9000원을 털어 산 것이 일본 니콘사의 '니코매트' 카메라였다. 노씨는 "학교 문턱도 밟아 본 적이 없는데 양복을 입고 신문물(사진기)을 다룬다니 참 멋져 보였지"라며 기억을 되짚었다.

사진기가 손에 익을 무렵인 75년부터는 전국을 돌았다. "인천.부산.마산.사천.여수.대구.포항….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사진을 찍었어. 하루에 100판을 찍는 날도 있었다니까." 그렇게 해서 장가도 들고 작은 집도 마련했다.

하지만 그의 '전성기'는 짧았다. 소득수준이 높아진 80년대 중반 사진기는 가정 필수품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중동 건설현장에서 귀국하는 근로자마다 '똑딱이 카메라(소형 자동카메라)' 한두 대는 챙겨올 정도였다.

사진 크기를 다양화하는 등의 자구책을 마련해보기도 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무렵부터 졸업식.시상식을 쫓아다녔다.

노씨의 뷰 파인더 속에 비친 대학 졸업식의 풍속도는 세월의 곡절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는 "소까지 팔아 자식의 대학 등록금을 대던 시절에는 일가 친척들까지 모두 와 졸업을 축하해줬다"면서 "지금은 옛말이 됐다"고 말했다. 거창한 전체 졸업식 대신 단과대별로 졸업식을 하는 학교가 느는데다 일부 학생들은 아예 참석조차 하지 않는 게 요즘의 풍경이란다. 예전에 느낄 수 있는 사회 새내기로서의 진지함은 사라지고, 부모에게 감사의 표시로 학사모를 씌워주던 모습도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이다.

노씨는 97년 외환위기 때 직장에서 쫓겨난 아들에게 5년 전 '17분 컬러 현상소'를 차려줬다. 하지만 현상소는 지난해 문을 닫았다. 디지털 카메라 홍수 탓에 현상 유지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그는 "사람과 세상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많은 것을 배우게 해준 것이 사진기"라며 사진기를 자랑스레 흔들었다. 노씨는 요즘 서울 창신동에 다른 사진사 두 명과 함께 조그만 사무실을 차려놓고 주로 돌.회갑 등 잔치사진을 찍고 있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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