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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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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옛날에 가난한 개미와 잘사는 베짱이가 이웃했다. 개미는 악착같이 일했다. 식량도 아끼고 장작도 패 베짱이에게 팔았다. 금고엔 돈이 차곡차곡 쌓였다. 이와 달리 씀씀이가 큰 베짱이는 “지화자 좋구나” 흥청망청했다. 돈 떨어지면 개미네 금고에서 빌려다 썼다.

 찬 바람 불자 베짱이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어쩐지 개미에게 속은 것 같아 분했다. 베짱이는 개미에게 따졌다. “내가 쫄딱 망한 건 당신이 돈을 막 빌려준 탓이야!” 베짱이는 한술 더 떴다. “이제부턴 당신도 일만 하지 말고 우리 집 쌀이며 장작 좀 사다 써!” 개미는 발끈했다.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지!”

 그렇지만 베짱이도 할 말이 있었다. 개미가 ‘환율’이란 속임수로 장난을 쳤다는 거다. 개미는 ‘위안’이란 돈을 썼다. 베짱이네 돈은 ‘달러’였다. 개미는 위안 값을 교묘히 낮춰 달러 값을 비싸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른 베짱이는 비싼 달러만 믿고 개미네 쌀과 장작을 사다 펑펑 썼다. 겁 없이 빚도 냈다.

 개미의 술수에 말렸다는 생각에 베짱이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번엔 개미네 위안을 단단히 손보고 말겠어.” 개미도 울컥했다. “남 핑계 대지 말고 당신 허리띠부터 졸라 매시지!” 바야흐로 개미와 베짱이의 싸움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솝 우화(寓話)에 빗댄 미국(베짱이)과 중국(개미)의 환율 전쟁 이야기다. 우화에선 베짱이가 굴욕을 당한다. 그렇지만 현실에선 반대가 될 공산이 크다.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라서다. 미국은 달러를 계속 찍어낼 수 있지만 중국은 그럴 수 없다. 이미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다음달 초부터 다시 돈 풀 채비를 하고 있다.

 중국은 지구력에서도 밀린다. 환율 전쟁을 떠받치는 힘은 ‘물가’에서 나온다. 벌써 국내 물가가 들썩거리고 있는 중국으로선 위안 값을 계속 눌러놓기 어렵다. 위안 값을 낮추면 수입 물가가 뛰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미국은 느긋하다. 물가가 너무 떨어져 고민이다. ‘약(弱) 달러’ 정책을 밀어붙일 여력이 아직 충분하다.

 게다가 미국은 다급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 달 중간선거를 치른다. 2012년엔 재선에도 도전한다. 선거에서 이기자면 경제를 살려야 한다. 그런데 Fed가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정부와 Fed가 2조5000억 달러나 되는 돈을 풀었어도 내수(內需)는 꿈쩍도 안 했다. 남은 건 외통수다. 수출로 활로를 뚫어야 한다. 미국이 중국 위안을 겨냥한 이유다.

 한데 어쩐지 불안하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건 늘 중간에 끼인 새우다. 중국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광활한 시장을 품고 있다. 금고엔 미국 국채가 잔뜩 쌓여 있다. 미국도 막 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만만한 건 한국처럼 먹고살 만하면서 외환시장 문턱도 낮은 국가가 아닐까. 그 결과가 어떨지는 원·달러 환율이 세 자릿수가 됐던 2006년을 떠올려보면 알기 쉽다. 혹여 “이게 웬 떡이냐”며 흥청망청했다간 쪽박 차기 십상이다.

정경민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