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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성, 착취의 도구인가 창작의 수단인가…노벨문학상 요사의 관능적 색채 물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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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천국은 다른 곳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김현철 옮김
새물결, 560쪽, 1만7000원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2003년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두툼한 분량의 소설은 내용이 정확하게 반분된다. 전체 22개 장(章) 중 홀수 장은 ‘19세기의 체 게바라’라 불리는 프랑스의 여성 혁명가 플로라 트리스탄의 삶을, 짝수 장은 플로라의 외손자이자 인상파 회화의 핵심 인물인 화가 폴 고갱의 타히티 시절을 다룬다. 실존인물을 그린 전기라는 점에서 요사의 일반적인 작품 경향과는 살짝 다르다. 요사는 주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거나 관능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을 써왔다.

  신작은 노벨상 작가의 품과 깊이를 맛보기에 손색이 없다. 19세기 초, 페루 출신 스페인군 장교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플로라에게 성(性)은 여성 착취를 강요하는 가족, 사회 제도 안에서 저주받은 선물일 뿐이다. 특히 남편과의 끔찍한 결혼생활이 그런 생각을 부른다. 그는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에 눈뜬다. 노동자의 권익과 남녀 평등을 보장하는 노동조합을 국제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프랑스 강연 여행을 떠난다. 말하자면 플로라는 이성적 기획에 의해 현실에서 천국을 실현하려 했던 이상주의자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반면 외손자 고갱에게 성은 창작의 열정을 얻는 최상의 수단이다. 소녀, 유부녀는 물론 동성애도 마다 않으며 관능으로부터 영감을 수혈 받는다. 문명·윤리·도덕을 거부하고 자신을 불태워 예술을 빚은 낭만주의자다. 예술이라는 고립된 영역에서긴 하지만, 그도 천국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외할머니와 다르지 않다.

 소설은 기질과 천분이 딴판이었던 두 사람의 삶을 기계적으로 대조시키는 데 끝나지 않는다. 촘촘한 정보와 상상력을 통해, 천국을 추구한 두 사람이 결국 한 뿌리였음을 보인다. 그 뿌리의 이름은 이름 붙이기 나름일 것 같다. 무엇보다 둘의 생애는 물론 내면 심리까지 생생하게 되살려 흥미롭다.

 요사의 작품은 계속 번역·출간된다. 문학동네 다음 주에 『염소의 축제 1·2를』, 다음 달 중 『나쁜 소녀의 짓궂음』을 펴낸다. 내년 초에는 첫 장편 『도시와 개들』이 나올 예정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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