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week& In&Out 레저] 여름으로 떠나는 여행, 호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9면

원시림. 말갛게 내리쬐는 햇살을 따라 고개를 들자 100m가 넘는 유칼리나무들이 하늘을 가린다. 울창한 양치식물 숲을 지나는 빨간색 증기기관차는 '칙칙폭폭' 정겨운 소리를 낸다. "빽" 기적소리와 함께 화통에서 하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자, 숲은 마법의 공간처럼 뽀얗게 변한다. 기차 창턱에 올라앉은 소년이 영화 속 해리 포터가 하듯 경쾌하게 손가락을 놀리자 언덕 모퉁이에서 파란 호수가 나타난다.

여기는 지구의 반대편, 호주 빅토리아주 단데농(Dandenong) 전원지역. 호주 제2의 도시 멜버른에서 동남쪽으로 약 36km 떨어진 산림 휴양지다. 6개의 국.주립공원이 밀집해 있으며 다양한 야생동물들을 만나고 삼림욕과 관목숲 산책(Bush Walking), 와인밸리 투어 등을 즐길 수 있다. '웰빙 가족여행'의 컨셉트에 딱 맞아떨어지는 휴식처인 셈. 여름이 한창인 지금이 떠나기엔 제격이다. 계절이 우리와 반대로 흐르는 것만으로도 호주로의 여행은 설렌다.

오늘도 매연으로 가득한 회색빛 거리를 지나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에게 챙 넓은 모자와 배낭을 건네보자. 그리고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우리, 코알라 보러 여름으로 떠날까?"

◆ 1세기를 달린 석탄 증기기관차


단데농을 찾은 이들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작은 기차역 벨그레이브.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증기기관차이자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석탄 증기열차로 꼽힌다는 '퍼핑 빌리(Puffing Billy)'가 출발하는 역이다. 뿌우 뿌~. 소리를 내지르며 기차가 출발 준비를 하자 아이들이 재빨리 창틀에 자리를 잡는다. 창턱에 올라앉아 팔다리를 기차 밖으로 내미는 것이 퍼핑 빌리의 '공식 승차 자세'. 시속 10~20km로 천천히 구릉지를 달리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 기차가 내뿜는 구름 같은 수증기에 둘러싸여 동화책 속에서 빠져나온 듯한 목제 다리와 전원 마을을 지나다 보면 유쾌한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탑승객은 가족 단위 관광객이 대부분. 몇 안 되는 현지 주민들에게는 출퇴근용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1900년부터 석탄과 목재를 수송하던 열차를 58년 관광용으로 개조했다. 벨그레이브에서 겜브룩까지 총 25km를 운행한다. 바구니 가득 바비큐 준비를 해 온 한 가족은 중간 역인 에메랄드 호수나 레이크사이드 역에서 내려 호숫가에서 피크닉을 할 예정이란다. 식사가 제공되는 점심.저녁 열차도 운행된다. 시간표.요금 및 운행시간 등은 퍼핑 빌리 홈페이지(www.puffingbilly.com.au)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생태 동물원과 최고급 와인농장

벨그레이브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힐스빌 보호구역(Healesville Sancutuary)에서는 200여종의 호주 토착동물들이 자연상태로 서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캥거루.오리너구리.코알라는 물론 호주의 야생 개 딩고, 타조를 닮은 에뮤, 오소리 같은 유대류 웜뱃 등 희귀동물들을 풀어놓고 기르는 31ha 규모의 생태 동물원이다. 어린이 방문객들을 위해 야생동물 전문가와 함께 산책을 하며 설명을 듣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와인 애호가라면 야라 밸리(Yarra Valley)의 와이너리 밀집지역을 놓치지 말자. 호주 최고급 와인 생산지역으로 손꼽히는 이곳은 특히 피노 느와.샤르도네.카베르네 소비뇽 그리고 스파클링 와인으로 유명하다. 현지인들은 "인공적인 가공을 피하고 순수한 자연의 손길에만 의존해 만든 와인"이라고 강조한다. 약 50여곳의 와이너리가 관광객들이 시음할 수 있도록 농장을 개방하고 있으며, 와인을 곁들인 식사도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먹이를 들고 있으면 손에 내려와 앉는 야생 앵무새들의 서식지, 멜버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633m 단데농 산 정상의 전망대 등도 방문할 만하다.

멜버른=신은진 기자<nadie@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 여행정보

◆ 항공 = 인천에서 멜버른까지 직항편은 없다. 캐세이패시픽항공(www.cathaypacific.com/kr)이 홍콩을 경유해 멜버른으로 매일 운항한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할 경우 시드니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면 된다.

◆ 기후 = 3월 말까지 호주는 여름. 평균 기온이 섭씨 14 ~ 25도 정도여서 지금이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멜버른은 하루에 사계절이 다 있다고 할 만큼 일교차가 심한 편. 기타 자세한 정보는 호주정부관광청 한국사무소(02-399-6500, www.eaustralia.or.kr)에 문의하면 된다.

*** 여기 놓치면 후회!

◆ 멜버른 시내관광

한가한 오후를 즐기고 싶다면 가벼운 읽을 거리와 간식 거리를 챙겨들고 공원으로 나가자.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멜버른은 대도시이면서도 공원·녹지 비율이 50%에 이른다. 도심 어디에서나 공원을 만날 수 있어 ‘정원 도시’로도 불린다. 멜버른에서 가장 큰 공원인 로열 보터니크 가든은 10만8천평 규모. 천천히 한 번 돌아보는 데도 한나절이 꼬박 걸린다. 멜버른의 명물인 자줏빛 트램을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kbs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그림 같은 배경으로 등장했던 플린더스 역, 페더레이션 광장 등은 야경이 특히 멋지다. 어둠이 내리면 디카를 손에 든 관광객들로 붐빈다. 도시 구획이 바둑판처럼 짜여 있어 무료로 얻은 관광 지도 한 장이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다.

◆ 그레이트 오션로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문구로 유명한 모 카드사 CF의 배경이 된 해안도로. 멜버른 남서쪽 해안을 따라 약 210km에 이르는 이 도로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자연이 만든 작품인 해안절벽과 기암괴석들이 도로를 따라 끝없이 펼쳐진다. 그래서 쭉쭉 뻗은 도로지만 창 밖 경치를 구경하느라 쌩쌩 속력을 내 달리는 차량은 없다.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하이라이트는 12사도상. 해안 절벽을 따라 섬처럼 떠있는 거대한 바위들의 모습이 마치 예수의 12제자가 서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12사도 전망 포인트에서 이륙하는 헬기 투어를 이용하면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 소버린 힐

멜버른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인 작은 마을 ‘발라랏’에 가면 ‘골드 러시’가 한창이었던 19세기 호주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1850년대 금광촌을 고스란히 재현한 ‘소버린 힐’은 일종의 민속촌. 거리에는 말과 마차들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고 19세기 복장을 한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건물도 당시의 형태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19세기 방식으로 제조된 빵을 맛볼 수 있고, 150년 전 방식으로 양초를 만드는 광경도 구경할 수도 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사금채취 체험. 소버린 힐 중앙 시냇물에 채를 들고 들어간다. 운이 좋으면 흙이 담긴 채를 흔들다 좁쌀 만한 크기의 금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글=신은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