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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제 발로 걷게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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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얼어붙었던 경제에 약간 온기가 도는 듯하다. 소비지표들이 호전되었고 투자 분위기도 나아졌다고 한다. 주식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는 등 증권시장은 벌써 크게 앞서가고 있다. 최근의 변화는 상당 부분 '경제 올인' 선언 덕분이라며 이 방향으로 정치권과 정부의 노력이 계속되고 강화돼야 한다는 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외곬으로 치닫는 것도 문제다. 아직은 경제에 약한 불씨가 지펴진 정도이고 고유가, 원화 절상, 미국 금리 상승, 북핵 문제 등 걱정거리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경제 올인'의 필요성에 관해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염려되는 것은 경제회생을 위해 정부가 지나치게 경제에 개입할 때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에는 불씨가 아예 꺼져 버리거나 불길이 엉뚱한 데로 번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나는 퀴즈가 있다. 어느 미국 여성이 길을 잘못 찾아 할렘 지역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다섯 명의 건장한 흑인 청년이 나타나 에워싸고는 저마다 안전한 데로 데려다 주겠다고 야단이다. 당황해 하는 이 연약한 여성을 간단하게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답은 농구공을 던져주면 된다는 것이다. 젊은 흑인들은 농구를 워낙 좋아하므로 여성에 대한 관심은 바로 사라져 버리고 시합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얘기 속의 여성이 우리 경제처럼 보이고, 청년들은 우리 정부를 연상케 한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부처마다 정치인마다 한마디씩 하고 나서는 것은 좋은 데 오히려 경제에 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지난 두 달 동안 경제나 사회 분위기가 다소나마 호전된 것은 정부 측이 발언.발표.정책 변경 등에 신중을 기하면서 경제에 크게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경제에 뭔가를 해주겠다고 에워싸고 있는 모습인데 어떻게 해서든지 경제를 이런 곤혹스러운 분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줘야겠다.

위의 퀴즈에서 힌트를 얻어 '정부 개혁'이라는 공을 던져주면 좋을 듯싶다. 정부와 여당은 개혁에 대해서만큼은 큰 애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개혁이라는 공으로 유인해 경제를 풀어주고 새로운 게임에 몰두케 하자는 것이다. 물론 그 공은 자기 스스로를 개혁하라는 공이다. 정치인들은 깨끗한 정치풍토를 정착시키고 정쟁을 줄이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개혁하는 데 정진해야 한다. 정부 각 부처도 과연 본연의 임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는지, 그래서 국민에게 제대로 봉사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특히 그간 정부의 이상주의적 정책이나 미봉책으로 인해 많은 규제가 남게 되었고 이것이 기업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게 현실이므로 규제개혁에도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공기업 문제도 민영화를 포함한 실용성있는 개혁방안이 마련돼야겠다. 공공 부문의 개혁이 가장 낙후되었다는 비판과 지적을 더 이상 듣지 않도록 정부 측의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경제에 올인한다고 해서 감시 또는 감독 기능을 가진 부처까지 자기 본연의 임무를 제쳐두고 발벗고 나설 필요는 없다. 다만 기업이 위협을 느끼거나 불편해 하는 비합리적인 제도 또는 관행이 있을 때 이를 개선하려는 성의를 보이면 될 것 같다. 구태여 엄청난 돈을 쓸 필요 없이 정부의 이런 노력만으로도 경제는 큰 힘을 얻게 된다. 우리 경제는 주위의 소란이나 공포 분위기만 없다면 제 발로 충분히 제 갈 길을 갈 수 있다. 괜히 손을 잡거나 부축까지 해주겠다고 정부나 정치인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노성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