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라응찬 차명계좌’ 감독 책임론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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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실명제법 위반 문제가 금융감독원의 책임론으로 번지고 있다. 라 회장이 차명계좌를 두고 있었다는 정황을 포착하고도 1년 넘게 놔두고 있었다는 게 12일 국정감사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일부러 묵인한 게 아니라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다. 특히 검찰 수사와 맞물려 적극적인 검사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날 국감에 출석한 금감원 안종식 실장의 답변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해 5~6월 신한은행 정기검사 때 이미 라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당시 검사반장이었던 안 실장은 은행 전산자료를 통해 계좌번호와 명의자 이름, 계좌 개설 지점 등을 파악했다. 이를 근거로 지난해 6월 “누구 지시로 실명 확인 없이 예금을 인출·예치했느냐”는 내용의 질문서도 신한은행 직원에게 보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이후 금감원은 더 이상 차명계좌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검찰이 수사를 위해 원본자료를 가져가 검사할 수 없었다”는 게 안 실장의 설명이다. 김종창 금감원장을 비롯한 상급자들도 “검사할 수 없다”는 내용은 보고 받았다고 국감장에서 증언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윤갑근 3차장검사는 13일 “검찰이 수사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계좌 조사를 멈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검찰이 이 사건을 내사종결하고 원본자료를 은행에 돌려준 뒤에도 금감원은 계속 손을 놓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13일 익명을 원한 금감원 간부는 “(다시 검사해야 한다는 데) 미처 생각이 못 미쳤다”고 말했다. 차명계좌 관련 세부정보는 검사반만 알고 있었고, 위에는 구체적으로 보고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검사해야 한다고 생각 못했다는 해명이다.

그러는 사이 라 회장은 올 3월 4연임에 성공했다. 라 회장의 차명계좌 문제는 연임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만약 그 전에 금감원이 실명제법 위반 여부를 조사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라 회장 차명계좌 문제는 올 4월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정치권의 지적이 이어지자 금감원은 7월 “차명계좌 정보를 검찰에서 받지 못해 조사를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금감원은 검찰로부터 관련 자료를 받고 나서야 검사에 들어갔다. 한편 지난해 6월 금감원이 보낸 실명제법 위반 관련 질문서에 은행 측이 어떤 답변을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민주당 우제창 의원은 12일 국감에서 “신한은행 직원이 ‘라응찬 회장이 (차명계좌 운영을) 지시했다’고 자백하는 답변서를 제출했다고 한다”고 주장했지만, 금감원은 신한은행이 제출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신한 재일동포 주주들 오늘 모임=신한금융지주 재일동포 주주 가운데 일부가 14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기로 한 모임을 놓고 신한금융 측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일부 동포가 라응찬 회장과 이백순 신한은행장의 퇴진을 요구할 움직임을 보이면서다.

이번 모임은 신한지주의 주식 100만 주 이상을 보유한 재일동포 주주들인 ‘밀리언클럽’이 주도한 것이다. 특히 일부 주주는 라 회장과 이 행장의 해임을 위한 주주총회를 소집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어, 신한지주 측을 당황하게 하고 있다. 신한지주 측은 재일동포 주주들에게 연락해 조직 안정을 위해 회의 참석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애란·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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