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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난민고등판무관 루버스 '성희롱'의혹에 낙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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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전직 네덜란드 총리가 부하 여직원들을 성희롱한 혐의로 생애 최대의 위기에 몰렸다.

네덜란드 경제장관.총리를 역임하고 지난 4년여간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으로 재직해온 루드 루버스(65.사진)가 그 주인공이다.(난민고등판무관이란 난민발생지역으로 유엔에서 파견하는 사절을 의미한다. 대사와 비슷하다.)

루버스는 20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성추문과 관련해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는 곧 수리됐다. 그러나 루버스는 여전히 "언론 등의 압력에 못 이겨 사표를 냈지만 성희롱 혐의는 사실무근이며 중상모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혐의=지난해 4월 판무관실 소속 미국인 여직원이 루버스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며 유엔 내부감사실에 진정을 냈다. 2003년 12월 집무실에서 회의를 끝내고 나오던 중 루버스가 자신을 뒤에서 껴안았다는 것. 루버스는 이에 대해 "등 부분에 손을 댄 것은 사실이지만 친밀함의 표시였을 뿐"이라며 "이 광경을 정확히 본 목격자가 두 명이나 있다"고 반발했다. 아난 총장은 당시 법률 자문을 거친 뒤 "법적으로 문제삼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지난주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루버스가 다른 여직원들도 성희롱했으며 자신의 지위를 내세워 유엔 진상조사단까지 위협했다"는 내부감사실 비밀보고서를 폭로하자 상황은 바뀌었다. 이에 따르면 루버스는 이외에도 4명의 여직원에게 몸을 더듬고 껴안는 등 성적 접촉을 시도했다. 그중 한 명은 "그가 두 차례나 예기치 않게 승진을 시켜준 뒤 호텔로 불러 '요즘 외롭다'고 접근해왔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보복당할까봐 두려워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루버스는=부유한 실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경제학을 전공한 뒤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다 정계에 뛰어들었다. 34세로 최연소 경제장관이 됐고 국회의원을 거쳐 43세에 최연소 총리로 뽑혔다. 총리직에 12년간 재임, 네덜란드 최장수 총리(제2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에 출마하기도 했다.

UNHCR는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다. 수석대변인 론 레드먼드는 "그는 재직기간 중 30만달러(약 3억원)에 이르는 월급 전액을 반납하고 무료봉사했다"고 말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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