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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2년] 上.<메인> 비싼 값 '학습효과' 실용 챙기기 뚜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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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5일로 취임 2년을 맞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에서 실용주의 기조가 두드러지고 있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숱한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개혁 담론과 이념의 과잉'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집권 3년차로 들어가는 최근에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경제.민생 분야를 챙기는 쪽으로의 전환 징후가 뚜렷해졌다.

청와대 참모들은 "노 대통령이 25일 있을 국회연설에서 "국제 경쟁력을 업그레이드시켜 '선진 한국'으로 향해 가자는 미래를 얘기할 것"이라고 전했다. 선진 한국 진입을 위한 정치.경제.사회 전 분야의 조건과 원칙도 제시할 예정이다.

올 신년사에서 노 대통령은 "상생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연두회견에선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더욱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또 "서민들의 어려움을 덜어줄 실효성 있는 대책도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이 같은 기류는 구체적인 정책으로도 나타난다. 심각한 사회 갈등을 빚어온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에 대해 그는 이미 "너무 서두르지는 말라"고 말한 바 있다. 원혜영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은 "무리하지는 않겠다"고 답했다.

부패 청산과 기업의 과거 분식 처리 방향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은 "현실 이상으로 엄격한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서로가 함께 감당할 수 있는 속도를 만들어 나가자"(3일 부패방지 보고대회)고 말해 유연한 접근을 강조했다.

서울대 송호근(사회학)교수는 "실용주의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산출하는 것"이라며 "비장한 이상주의와 비현실적인 상황 정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진짜 실용주의는 '앞(미래)으로 제대로 나가면 뒤(과거)는 저절로 바로잡힌다'는 신념"이라고 덧붙였다.

여권의 개편도 실용주의와 무관치 않다. 노 대통령은 올 초 경제보좌관 인선 때 "실물과 시장을 아는 사람을 쓰겠다"고 말했다. 그 결과 대기업 이사를 지냈고, 부도까지 경험한 정문수 교수가 발탁됐다. 시장친화적 성향의 이헌재 경제부총리도 재신임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진보적 이념의 학자군도 계속 기용되겠지만 이들의 역할은 균형을 잡기 위한 자문 역할에 국한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에게 교육부총리를 맡기고 대학 경쟁력 강화를 주문한 것도 실용주의적 접근으로 평가된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진통을 겪고 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실용.개혁의 논란이 치열하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에도 기류의 변화는 있다. 쌍용그룹 상무 출신의 정세균 원내대표, 풀무원 경영자 출신인 원혜영 정책위의장의 등장이 대표적 사례다. 이 연장선상에서 여당은 출자총액제한제를 완화하고 기업의 분식회계에 대한 집단소송도 2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이는 "내년 6월의 지방선거, 2007년의 대선을 감안할 때 정말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올 1년"이라는 여권의 판단 때문이다.

취임 2년의 어젠다인 실용 노선이 이만큼이나마 자리잡기까지는 적잖은 경제.사회적 비용이 들었다. 개혁지상주의식 독선과 편가르기, 막말.오기 정치, 야당의 극한 반발, 구태 국회는 경제와 민생의 발목을 잡았다. 외국에서도 우리의 시장경제 의지에 대한 의문을 드러냈다. 노사관계에서는 원칙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개혁 피로 증후군'이 사회를 휘감았다.

물론 당정 분리, 권위주의 해체, 정경유착 근절 등의 정치개혁 조치들은 일정 부분 성과가 있었지만 "먹고살기 힘들다"는 민심의 악화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숭실대 강원택(정치학)교수는 "그간 개혁 구호는 많았지만 사회적 갈등 속에 실질적 성과는 별로 없었다"며 "대통령과 여당의 정책이 최근 많이 바뀐 게 사실인 만큼 이런 정책의 타당성을 알리고 설득.포용해 끌어가는 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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