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호의 영화 풍경] 타계한 아서 밀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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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얼마 전 타계한 아서 밀러는 테네시 윌리엄스와 더불어 가족 멜로드라마의 기틀을 잡은 작가다. 테네시 윌리엄스가 여성적이라면 아서 밀러는 남성적이다. 특히 그는 부자간의 갈등을 다루는 멜로드라마에 탁월했다. 윌리엄스가 1947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밀러가 49년 '세일즈맨의 죽음'을 발표할 때 멜로드라마는 절정기에 이른다. 두 작가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 연출가는 엘리아 카잔이다.

세 사람 모두 50년대가 되면 주 활동무대를 뉴욕에서 할리우드로 옮긴다. 할리우드가 특히 50년대에 빛나는 멜로드라마들을 쏟아놓는 게 우연이 아니다. 두 작가 중 할리우드에서 먼저 성공한 사람은 테네시 윌리엄스다. '장미 문신'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등이 연이어 히트한다. 엘리아 카잔도 '에덴의 동쪽' 등으로 감독 변신에 성공하는데, 아서 밀러만 할리우드에선 뒤쳐졌다.

통 큰 작가로 뉴욕시절부터 작가들의 리더역할을 하던 아서 밀러가 사회적 리더로까지 변하게 된 사건이 바로 매카시즘이다. 좌파활동을 한 사람의 이름을 대면 살아남는 비열한 방법이 동원될 때다. 아서 밀러는 매카시즘과 정면으로 맞섰다. 그럼으로써 그는 용기 있는 예술가의 양심이 됐다. 사회의 가치와 길항관계에 있는 개인들을 주로 다루던 그가 스스로 본보기를 제시한 것이다. 이때, 즉 56년 밀러는 마릴린 먼로와 결혼한다.

밀러는 자신의 아내를 위해 시나리오를 한 편 썼는데, 바로 그의 유일한 할리우드 작품인 '잘못 맞춘 짝'(The Misfits, 1961)이다. 존 휴스턴이 감독하고, 클라크 게이블.몽고메리 클리프트 등 스타들이 출연했다. 아서 밀러의 작품들이 그렇듯 이 영화도 부자간의 갈등을 다룬다. 어찌 보면 아서 밀러는 평생 똑같은 이야기만 했다. 곧, 부자간의 충돌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영화를 찍는 동안 아서 밀러는 먼로와 이혼한다. 이혼하자마자 밀러는 사진작가 여성과 세 번째 결혼을 한다. 이들 사이에 난 딸이 지금 할리우드에서 여성감독으로 명성을 쌓고 있는 레베카 밀러다. 레베카의 남편, 즉 아서 밀러의 사위는 배우 대니얼-데이 루이스다. 밀러와 영화의 관계는 대를 이어 진행되고 있다.

한창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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