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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르네상스’ 타고 204종서 289종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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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호 11면

문예중앙은 유명 스타일리스트인 오필민씨에게 디자인을 맡겨 면모도 일신했다. 속간호를 받아 든 사람들은 “문예지 같지 않다”고 반응했다. 신인섭 기자

8월 하순 ‘열혈’ 문학독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1977년 창간된 전통의 문학잡지인 계간 ‘문예중앙’(작은사진)이 정간(停刊) 2년 만에 ‘2010년 가을호’를 내며 속간(續刊)한 것이다. 새 문예중앙의 편집위원들은 편집 키워드로 ‘소통과 긍정’을 내세웠다. 작품성을 따져 순위를 매기기보다는 작품 간 차이점 또는 다른 점을 긍정적으로 주목한 후, 그 바탕 위에서 문단 내부는 물론 독자와 소통 확대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른바 ‘본격문학’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SF·추리소설 등 다양한 경향의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한편 미술·음악·건축·철학 등 인문학, 인접 예술 장르의 읽을거리도 폭넓게 제공하겠다는 얘기다. 회화사(繪畵史)에 녹아든 철학의 영향을 소개하는 문화비평가 이택광 교수(경희대 영미문화)의 연재물, ‘철학자의 아틀리에’가 그런 생각이 반영된 대표적인 코너다.

‘문예중앙’ 속간 계기로 본 한국 문예지의 재도약

새 단장한 문예중앙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문예중앙 원미선 편집장은 “정기구독 신청자가 출간 한 달 반 만에 350여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물론 정기구독 신청자 중에는 문예중앙 관계자들의 권유에 의해 정기구독을 결심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원 편집장은 “고무적이게도 300명 넘는 사람들이 인터넷, 홍보 팸플릿 등을 보고 자발적으로 신청했다”고 말했다. 속간호는 처음 2000부를 찍었다. 하지만 모두 소화돼 최근 500부를 더 찍었다.

물론 이 정도 판매로 문예중앙이 흑자를 보지는 못한다. 계간지 한 호를 만드는 데 5000만원, 1년이면 2억원 정도가 들어간다는 게 출판계의 정설이다. 권당 가격을 1만원으로 잡을 경우 5000부는 팔아야 본전이다. 국내 문예지 중 수익을 내는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호 1만2000부가량 찍는 계간 창작과비평 정도가 8000∼9000명에 이르는 두터운 정기구독자층 덕분에 이익·손실의 균형을 맞춘다. 그 때문에 출판사 편집자들은 “문예지 출간은 돈 쏟아붓는 사업”이라고 말한다. 한 출판사 오너가 몇 해 전 “1년에 1억 손해 보는 문예지 대신 장편소설 10권을 계약하는 게 낫지 않으냐”고 말했다는 얘기도 출판가를 떠돈다.

그렇다면 문학 출판사들은 왜 손해를 감수하면서 문예지를 내는 걸까. 손실을 벌충할 어떤 이득이 있는 걸까. 문예지 출판사의 손익계산서를 들여다봤다.

당장은 손해, 길게 보고 투자
놀랍게도 문예지 숫자는 최근 몇 년 새 꾸준히 증가했다. 한국잡지협회·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에 따르면 올 9월 현재 전국적으로 발간되는 계간·월간 문예지는 모두 289종이었다. 2004년 204종에서 100종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2008년에는 271종, 지난해에는 289종이었다.

가깝게는 문예중앙 속간호가 나온 직후인 9월 초, 계간지 ‘동리목월’ 창간호가 나왔다. 경상북도와 경주시, 한수원㈜월성원자력본부 등의 지원을 받아 동리목월기념사업회가 발행하는 잡지다. 인천대 총장을 지낸 문학평론가 장윤익씨가 발행인으로 나섰다. 지자체가 돈을 대는 만큼 동리목월은 일반인들에게 보다 친숙한 읽을거리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창간호에서 한국의 문학교육 실태를 점검한 데 이어 ‘대중가요 속에 나타난 문학’ 같은 특집을 앞으로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들은 문예지가 장부상으로 당장은 손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득이라고 보고 있었다. 계간지 ‘세계문학’을 내는 민음사의 장은수 대표는 “문예지 발간은 일종의 투자 개념”이라고 말했다. 출판사 간 경쟁이 심해져 갈수록 작품 확보가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문예지 소설 연재는 작품성도 있고 ‘돈도 되는’ 장편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문예지에 장편소설을 연재하면 안정적인 원고료 수익을 올리는 건 물론 작품을 사전 홍보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그야말로 미공개 작품을 ‘전작 출간’하는 것보다 문예지 연재를 선호한다. 그러나 문예지 연재가 출판 계약처럼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출판사와 작가 간에 지켜지는 불문율 성격의 관행일 뿐이다. 일종의 신사협정이다.

1970, 80년대에는 선명했던 주요 문학 출판사들의 이념적 지향이 90년대, 2000년대 들어 흐려진 점도 문예지들의 작품 확보 경쟁을 부추긴다. 더 이상 작가들이 진영으로 나뉘어 특정 출판사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학과지성사 이근혜 과장은 “그러다 보니 요즘 장편 확보는 시쳇말로 전쟁 같다”고 말했다.

시·소설이 예전만큼 읽히지 않는데 작품을 확보했다고 해서 출판사가 떼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예중앙 원미선 편집장은 “문예지를 운영해 확보한 작품 중 1만 부 팔리는 책이 1분기에 한 권만 나와준다면 문예중앙 운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대박의 유혹도 출판사로서는 무시 못한다. 140만 부가 팔린 신경숙의 장편 엄마를 부탁해도 계간 창작과비평에 연재됐던 작품이다. 이래저래 생존을 위해 또는 대박을 위해 문예지를 내야 하는 구조다.

초창기 문예지도 ‘통섭’ 추구
‘…이는 어느 민족이나 국가에 있어서도 문화의 힘이 그 민족이나 국가의 기본적인 요소임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문화의 기본적인 핵심은 문학이다…광의에 있어서의 문학은 철학 정치 경제 등 일체의 학문을 대표할 수도 있다. 이는 문학이 인생의 총체적인 한 학문인 까닭으로서 다른 어떠한 예술보다도 사상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소이이기도 하다. 이번 뜻을 같이하는 몇몇 동지들과…본지의 창간을 실천한 것은…’.

1960년대 대표적인 문학잡지였던 월간 현대문학의 55년 창간사다. 주간을 맡았던 문학평론가 조연현(1920∼81)씨가 썼다. 문학을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의 갈래가 아니라 민족국가의 국력 신장과 관계된 인문학의 핵심 분야로 보는 시각이 표명돼 있다. 이런 입장에서는 문예지는 단순한 문화상품이 아니다.

국내 잡지의 역사는 19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남선이 최초의 잡지인 월간지 ‘소년’을 창간하면서다. 30년대 들어 신문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기 전까지 문학잡지는 문학은 물론 서구 신지식이 소개되는 매체로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다. 덕분에 당시 잡지의 위상과 영향력은 요즘을 능가했다. 3·1운동 이듬해인 20년에 창간돼 26년 일제가 폐간한 월간지 ‘개벽’은 많게는 8000부씩 팔렸다. 시인 김행숙(강남대 국문과) 교수는 “사회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한 당시 지식계의 목소리를 폭넓게 담아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개벽’은 순수 문예지라기보다 요즘 창작과비평보다 더 종합적인 성격의 잡지였다는 것이다.

연세대 이경훈(국문과) 교수는 “초창기 문예지들은 작품 소개, 백일장 등을 통해 근대 독자를 훈련시키거나 작가를 발굴하는 역할도 했다”고 말했다. “문학교육을 통해 독자들 사이에 민족 개념을 형성하는 데도 기여했다”는 것이다. 역시 문예지가 단순히 문학이라는 좁은 울타리에 갇히지 않았다는 얘기다.

사회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와 담론의 공론 장으로서, 문예지의 기능은 70, 80년대에 부활한다. 66년 창간된 창작과비평, 70년 창간된 ‘문학과지성(현 문학과사회)’ 등 양대 문예지를 거점으로 해서다. 당시 대학생 등 지식인들은 시·소설을 읽는다기보다 그를 통해 세상을 읽기 위해 문예지를 구해 탐독했다.

문예지의 이런 기능은 요즘도 여전하다. 문학과지성사 김수영 대표는 “당대의 사회적·인문학적 이슈를 해당 분야 전문가의 글을 통해 돌아보고 정리·반성하는 작업은 여전히 의미 있고 유효하다”고 말했다. 문예지가 여전히 그런 역할을 맡고 있고, 이는 한 출판사의 출판 이념과 연결된 문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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