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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터뷰] 권오규 주 OECD 특명전권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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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재외 공관장 회의에 참석한 권오규 주경제협력개발기구(OECD)대사를 만났다. 인터뷰에서 그의 제1성은 "OECD에서 배우자"였다. "고령화.복지재정 등 문제와 사회적 갈등을 앞서 겪은 나라들이 어떻게 슬기롭게 이를 풀어나갔는지 따져 보면 우리의 앞날을 위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OECD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

-선진국에서는 이념이 다른 정권이 들어서도 정책기조는 변함이 없다는데.

"유럽이 그렇다. 유럽을 주도하고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중도 수렴'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누가 정권을 잡아도 이런 흐름엔 큰 편차가 없다. 프랑스가 좋은 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리더십이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은 우파이면서도 국정 운영은 중도적인 입장에 섰다. 그는 정권을 잡은 뒤 내각에 좌파를 많이 등용하고 좌파적 정책을 많이 폈다. 프랑수아 미테랑도 마찬가지다. 좌파였지만 실제론 우파적 개혁을 완성한 인물이다. 1981년 정권을 잡은 그는 14년간 집권했다. 이 기간에 사회당의 노선은 완전히 중도로 정착했다. 좌파 대통령이 집권한 이때 공기업 민영화를 완성했고, 대량해고를 통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때부터 정착된 프랑스 정책기조는 이른바'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economically Liberal), 사회적으로는 사민주의(socially Social Democratic)'로 자리 잡게 됐다. 경제운용은 시장경제 원리를 바탕으로 하되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중도정책이다."

-정책의 외부 여건이 작용한 점은 없었나.

"국제환경 변화가 그런 중도적 정책기조를 유지토록 해온 점도 있다. 글로벌라이제이션.유럽연합(EU) 등 환경 변화로 정책 선택의 폭이 좁아진 것이다. 경제정책이 자유주의적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통상교섭본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FTA가 경제정책을 시장원리에 맞추도록 하는 닻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욕구도 중요한 요소다. 근로자와 농민이 중도적 성향으로 수렴된 것이다. 정보화 등 기술 변화로 중간 전문직 노동자가 늘어났다. 강성 노동운동을 전개할 핵심 계층이 줄어든 것이다. 현재 30%인 중간 전문직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고, 노조 조직률도 8%로 떨어졌다.

농민도 마찬가지다. 세계무역환경 변화 등으로 선진국의 농업은 대개'4%-4% 박스'를 형성하고 있다. 농업이 차지하는 인구 비중도 4%, 국내총생산(GDP) 비중도 4% 이내다. 그래서 다른 부문이 농업 지원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농업 비중이 줄어들었다."

-우리나라도 고령화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선진국의 연금개혁 경험이 어떤가.

"연금제도는 현재 국회에 계류된 것부터 빨리 처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연금보험료와 급부액 조정이 중심내용인 현재의 개선안으로는 지속 가능성이 의문스럽다. 더 근본적인 개혁이 있어야 한다.

연금개혁에 성공했다는 스웨덴도 개혁안이 마련되기까지 4년이 걸렸다. 그 핵심은 ▶확정급부형 제도를 확정갹출형으로 바꾸고▶민영화한 것이다. 확정급부형은 훗날 받게 될 연금액을 미리 정해 놓아, 결국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를 부양하는 체제다. 그러니 고령화가 진전되면 지탱할 수 없게 된다. 확정갹출형은 내는 연금보험료를 미리 정하고 훗날 받는 돈은 개인이 낸 누적 보험료에 연계되는 제도다. 고령화가 진전돼도 재정 압박 걱정이 없다. 스웨덴 개혁안도 처음엔 반발이 컸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국민이 이해하게 됐다. 스웨덴 모델은 동구권과 남미에서 다 따라갔다.

OECD는 연금 비중을'국가연금:기업연금:개인운용=4:3:3'으로 할 것을 권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연금개혁이 그렇게 시급한가.

"연금이야말로 경제의 발목을 잡을 뇌관 중의 뇌관이다. 연금문제는 재정적자가 GDP의 5%를 넘으면 비상이 걸린다. 많은 경우 미세한 계수조정만 하다가 재정적자가 10% 수준에 이르러 극심한 어려움을 겪어야 비로소 개혁을 추진한다. 한국도 이대로 가면 그런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이해 당사자가 국민 모두라서 개혁 설득에 시간이 걸린다. 빨리 공론화해야 한다. 모든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야 한다."

-모두의 관심인 교육개혁에 관해 무엇을 배울 수 있나.

"'피사 2003(15세 학생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을 보면 핀란드가 1등이고, 한국은 2등이다. 초.중.고 교육은 큰 문제가 없다는 결과다. 그런데 국제경영개발원(IMD)의 평가를 보면 대학 졸업자 충족도에서 한국이 바닥권이다. 교육개혁은 대학 개혁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얘기다.

학생 1인당 교육비부터 보자. 우리나라는 미국의 25%, 선진국들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투자를 안 하는 데 어떻게 좋은 제품이 나오겠는가. 교육부총리가 대학 투자에 5조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공감한다.

사교육비를 대학으로 흘러가게 해야 한다. 이건 주민자치와도 관련이 있다. 지방재정과 교육재정투자를 통합하고 순환하게 해야 한다. 주민들이 원하는데 어떤 지자체장이 안 하겠느냐."

-교육투자만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인가.

"물론 교육 내부의 변화도 있어야 한다. 대학평가가 철저해야 한다. 취업률.교수.학생 등에 관한 모든 지표가 적나라하게 공표돼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제대로 선택할 수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교과목이다.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을 대학이 디자인해야 한다. 프랑스의 그랑제콜을 보자. 교수의 50%는 기업체 기술 책임자 등이다. 학생은 매년 4~7개월은 인턴을 해야 한다. 교수와 학생, 기업이 바로 연계돼 있고 졸업하면 바로 기업에 채용된다. 사회에 필요한 인력을 길러내는 시스템인 것이다."

만난 사람=김정수 경제연구소장
정리=김준술 기자

*** 권오규 대사 약력

▶ 1952년생 ▶ 경기고.서울대 경제학과 ▶ 미국 미네소타대 석사 ▶ 중앙대 경제학 박사 ▶ 행정고시(15회) ▶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99~2000) ▶ 대통령 재정경제비서관(2000~2001) ▶ 재경부 차관보(2001~2002) ▶ 조달청장(2002~2003) ▶ 대통령 정책수석비서관(2003~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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